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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영혼을 만나 마지막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죽음의 상실감을 삶의 의지로 채워주는 김선미표 힐링 판타지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꽃으로 피어나는 세계의 이야기다. 이승에 미련이 남은 영혼이 꽃으로 피어나서 살아생전 가장 소중히 여겼던 한 사람을 부른다. 이 기적 같은 만남을 주관하는 곳이 “귀화서”다. 귀화서는 600년 역사의 공공기관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깃든 꽃, 즉 “사혼화”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소중한 사람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이자, 고인을 안식으로 인도하는 마지막 관문이기에 귀화서 사람들은 성심을 다해 의식을 치른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겸허한 자세를 그들을 통해 상기할 수 있었다.
취준생 마리의 계약직 분투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깊이와 감동을 더한다.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아내를 잃은 남편, 형을 잃은 동생 등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죽음들이다. 사혼화가 오로지 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소설 속 설정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존재로서의 나라는 의미와 내가 가진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만일 내가 죽음을 맞이하여 사혼화가 된다면 마지막으로 누구를 만날 것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혼화가 된다면 과연 나를 만나러 와줄까?’ 같은 질문들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은 죽은 자의 사연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이승에 미련이 남아있던 고인이 귀화서를 통한 마지막 만남으로 미련을 털고 이승을 떠날 때 산 사람도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소중한 사람이 떠났다 해”서 “그와 함께 행복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떠난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바라는 “행복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271쪽)”아야 한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가슴에 오래 남았다. 나는 이 삶을 더 사랑해야만 한다.
이 소설은 밀리의 서재 사전 연재 연간 1위를 했을 뿐 아니라 2025년 런던 도서전 하이라이트에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출간 전 영상화 검토도 쇄도했다고 하니 소설을 향한 뜨거운 관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곧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일. 사혼화의 이야기를 듣는 주인공 마리처럼 나도 마음을 열고 타인에게, 세상에게 다정한 자세로 귀를 기울여야겠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매시간 죽음과 맞서고, 때론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결국엔 남은 이들은 힘들게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해나가며, 소중한 사람과의 평범한 일상에서 얻는 기쁨들을 바라보며 산다. 누군가의 깨달음과 간절한 꿈이 삶을 밝히는 등불로 바뀌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애쓰기도 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 김선미,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 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