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란 무엇일까. 싸움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한 나에게 그것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주술과도 같은 말이었다. 정면으로 마주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일단은 못 본 척 돌아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드는 벽 같은 것.
하지만 그런 나라도 소설을 쓸 때면 주인공 다음으로 갈등유발 인물을 설정할 만큼 작품 안에서의 갈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주인공이라면 자고로 굴러야죠!”라는 말에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하며 구겨진 이불처럼 몸이 쪼그라드는 인간도 나였다는 것이다.
『딜레마 사전』은 그런 나의 자세가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를 알려주었다. 나는 내가 갈등의 의미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망쳐가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해피엔딩이라는 책임감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해피하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작가였던 것이다. 주인공을 반드시 해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적당히 못된 악당을 만들고 수습하기 쉬운 일만 벌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해피해졌다. 고만고만하게. 내가 주려던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건 그 이야기를 만든 나 역시도 행복해지지 않는 길이었다.
궁극적으로 캐릭터의 위험은 작가가 쓰는 이야기의 목적이다. 작가들은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하거나 갈등 수준이 너무 낮아 독자들이 책을 덮어버리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46쪽
큰 성취감을 얻으려면 크게 넘어져야 한다. 이 책은 반복해서 말한다. 그러곤 어떻게 해야 주인공을 크게, 치명적으로 계속해서 자빠뜨릴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정말 이 정도까지 해야 한다고? 지레 질릴 정도였는데, 그 질림의 크기가 내 작품이 성공할 수 없던 이유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이 부릅떠지고 책장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갈등의 의미와 종류, 중요성에 대한 열렬한 가르침이 이어진 뒤 드디어 사전이 등장한다. 주제별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갈등이 다 정리되어 있는데, 단순하게 사례만 모은 것이 아니고 그 사례들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결과는 무엇인지, 그때 캐릭터에게 생길 수 있는 감정이며 내적 갈등,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요소 등 하나의 갈등을 가지고 써볼 수 있는 설정들을 가능한 많이 제시한다.
그 갈등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갈등이 해소된 후의 긍정적인 결과까지 보여주어 갈등이란 어떻게 구축하고 진행해서 마무리해야 하는지를 전체적인 과정으로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글감을 얻는 게 아니라 그 글감으로 뻗어갈 수 있는 이야기의 가지까지 함께 얻는 기분이어서 당장 채워 넣기만 하면 내 이야기가 완성될 것 같은 희망적인 기운에 휩싸였다. 이제 나는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주인공에게 완전한 행복을 쥐여주기 위해 잘 넘어뜨리면서. 이야기의 해피엔딩이 나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때까지.
윌북에서 출간하는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는 글 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책이어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독하고 있는 블로그 피드에서, 가입한 카페에서 언제나 신속하게 다뤄지던 이유를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추천사를 쓴 심너울 작가의 말대로다. 이 책은 “이야기의 원천을 담은 데이터베이스”였다.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든든한.
※리뷰를 쓰는 대가로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았습니다.
※본 글은 필자의 솔직한 감상과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