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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호소의 말들
  • 최은숙
  • 14,400원 (10%800)
  • 2022-07-13
  • : 2,062



인권은 중요하며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정작 그 인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최은숙 작가의 『어떤 호소의 말들』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인권이란 추상적인 도덕 개념이거나 오랜 시간 옳다고 여겨온 막연한 믿음이거나, 떠들썩했던 몇몇 뉴스의 분류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웅크린 말들’에 작은 스피커 하나 연결해 세상에 조용히 울려 퍼지게 하고 싶었다(11쪽)”던 작가의 심정을 나의 무지함 앞에서 이해한다. 누군가가 스피커를 연결해서 볼륨을 높이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던 말. 세상에 그런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어떤 호소의 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최은숙 조사관이 조사관으로서 일하면서 겪은 일들과 생각, 느낀 점들을 풀어 쓴 이야기다. “검정색 끈 대신 다정한 마음으로” 묶은 “나의 다정 기록(11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딱딱한 보고서가 아닌 한 사람의 다정한 시선을 통해서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사건과 그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하는 데 일조한 사람, 기관, 사회 구조 등을 돌아보게 한다. “국가권력의 희생자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관인 인권위(76쪽)”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인권위의 권한이 왜 ‘권고’에 그치는지, 인권위의 독립성은 어째서 보장되어야 하는지 등의 심도 있는 질문도 스스로 던져보게 된다. 그것이 곧 나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깨달을 때 이 책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인권위 조사관의 일이라면 사실 너머에 있는 다양한 무늬의 진실을 헤아려보는 것이야말로 인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36쪽


누군가의 억울함을 밝히는 데도 법 지식이나 조사 기술 너머의 용기와 열정, 선의나 정직함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141쪽



『어떤 호소의 말들』이라는 제목 옆에는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사건 너머의 이야기”라는 건 딱딱한 문장으로 압축된 사건 뒤의 진실과 사람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권고나 호소처럼 들린다. 인권이란 결국 사람의 일이고, 사람에게 가까워지려면 몸을 기울여야 한다. 그건 곧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기 위함이지 않을까.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가 무상으로 누리고 있는 타인의 애씀과 힘겨움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한 듯 누리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권리들이 사실은 현장에서 일하고 싸우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으면 ‘몰랐어’, ‘관심 없어’하는 말은 함부로 뱉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깨달음에 대해 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 그들의 귀를 거쳐 내 귀로 들어오는 목소리를 듣고 나 또한 잊지 않기 위해.


스물일곱 평범한 직장인에서 시민운동가로, 시민운동가에서 인권위 조사관이 되어 20년 넘게 인권을 수호하는 일을 해온 저자가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사실 이 책은 사건보다 사람이 보이는 이야기다. 긴 세월 일하며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사무적인 태도를 자각하는 사람. 억울한 사람들 모두에게 전력을 다할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도 전력을 다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을 고백하며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무능함과 무심함을 밝히는 사람. 소속 집단의 과오를 자신의 일처럼 부끄러워하는 사람. 선례가 없음이 문제라면 스스로 선례가 되어보겠다고 하는 사람. “조금씩 무심했고 조금씩 무책임했을 뿐(51쪽)”인 우리를 꼬집어 말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끝에는 “아주 옅은 농도의 다정함이나마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173쪽)”고 말하는 그런 사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인권은 언제나 피해자들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59쪽


모든 일이 법과 제도를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인권을 위한 일이라면 더욱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은 서로를 ‘조금 슬프고 귀여운 작은 존재’로 응시하는 것이고, 그것을 나는 ’인권의 마음‘이라 부르고 싶다. 그 마음이야말로 법의 그물이 구제하지 못하는 억울함이 기댈 곳인 것 같다. 160쪽




※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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