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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 마사키 도시카
  • 14,400원 (10%800)
  • 2022-06-17
  • : 359




2004년 3월. 여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하야시 류이치가 경찰서 화장실에서 도주한다. 얼마 뒤 하야시 류이치로 오인 받은 중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순찰차에 쫓기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죽은 학생의 이름은 미즈노 다이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미즈노 이즈미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슬픔에 울부짖는다. 엄마는 알고 싶다. 다이키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311쪽)”를.


가족이 전부이던 한 여성에게 가족이 망가지는 일은 세상이 끝나는 일과 같다. 이즈미의 삶은 다이키가 죽는 순간에 멈췄다. 경찰은 자신들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하고, 사람들은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을 보고 달아난 애는 애초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여긴다. 탈주한 살인범이 새로운 사건을 벌이고, 그로 인한 사람들의 분노와 불안감마저 죽은 다이키에게로 직행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이즈미는 처절하게 무너져내린다. 소설은 황망하게 자식을 잃고 슬픔에 틀어박히게 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지나친 슬픔이 어떤 식으로 독이 되는지를. 애정에 등을 맞붙이고 있던 광기의 얼굴을 설핏설핏 드러내며 우리가 아는 사랑의 다른 표정을 보여주기를 시도한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2019년 신주쿠구 빌라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된 사건을 맡게 된 미쓰야 슈헤이는 다이키 모자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로 지정된 신입 형사 다도코로 가쿠토와 함께 피해자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던 모모이 다쓰히코의 행방을 찾는 데 전념한다. 그런데 그 일은 묘하게도 15년 전 도주 중인 살인범으로 오인되어 사고사 한 소년, 다이키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미쓰야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질 때가 많은 인물로 주변인들은 그를 괴짜로 여긴다. 도통 속을 모르겠고, 말수도 적은 만큼 사건의 실마리도 속시원히 내주지 않는다. 그로 인한 답답함은 파트너인 가쿠토의 입을 통해서 독자에게까지 연결된다. 참고로 가쿠토는 열등감이 심해서 타인을 향한 거부반응까지 보이는 인물인데, 미쓰야의 침묵조차도 자기 비하의 건수로 삼던 그가 미쓰야와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도 꽤 볼 만한 이야기다.


미쓰야는 왜 현재의 사건을 15년 전 소년의 사건과 연관 짓는 걸까. 수수께끼는 만만치 않고, 좀처럼 예측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흥분할 일이다. 미쓰야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하여 진득하게 파고든다. ‘모른다, 그러니까 알고 싶다’는 그의 단순한 논리는 한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타인의 입맛대로 해석된 후 쉽게 잊히는 어느 사건 속의 죽음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은 2018년 여름 오사카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을 보고 썼다고 한다. 사망한 학생이 무면허에 훔친 오토바이를 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자업자득이라며, 사람들이 학생의 죽음을 당사자의 책임으로 쉽게 처리하는 모습에 작가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 때문에 쓴 소설이라기엔 결말이 좀 의아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은 분명하게 전해진다. 어떤 죽음은 너무도 쉽게 해석된 후 잊힌다. 그 해석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미쓰야 같은 사람이 생긴다. 이해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매달리는. 사랑하는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다이키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아이가 그 밤에 자전거를 타고 나간 이유가 무언지, 정말 집이 불편해서였는지, 엄마인 내가 잘못해서인지,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이즈미는 그 질문에서 놓여나지 못할 것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완벽한 듯 보이던 이즈미의 집에 죽음이 덮칠 때부터 예정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다이키가 죽은 후 이즈미가 맞닥뜨려야 했던 충격 중 하나는 자신이 아들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들의 웃는 얼굴을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아들이 밤 늦은 시각에 가족들 모르게 집을 나갈 거라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아들을 향한 불확신은 이즈미를 자책감의 늪으로 끌어내리며 광기에 젖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된다. 신주쿠구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던 모모이 다쓰히코의 어머니, 지에에게도 광기 어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들을 향한 애정이 지극한 지에는 그 애정이 지나친 나머지 며느리인 노노코를 화근으로 삼으며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노노코의 어머니인 요코는 자신의 애인이 딸을 겁탈하는 걸 보고 금속 배트로 쫓아내더니 어느 날 “죽였으니까” 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딸에게 전한다. 맹목적인 애정은 이성의 눈을 가리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잘못된 방식을 선택하게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 안에 감춰져 있었던 어두운 본성을 본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조금이라도 안타까움이 느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 이즈미의 자문으로 들린다.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자책감이자, 황망하게 아들을 죽음에 뺏겨버린 어머니의 통곡, 기어이 죽음의 손에 넘어졌던 아들에게 진실을 묻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진실은 아름답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이 진실이다. 묵묵하지만 꿋꿋하게 그 진실을 찾아가는 미쓰야 슈헤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후속작이 이미 출간된 상태라고 하니 하루 빨리 국내로 들어오길 바랄 일이다. 가쿠토와 얼마나 더 가까워졌을지, 활약상이 더 보고 싶다.




※ 모로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본 글은 필자의 솔직한 감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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