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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
  • 다자이 오사무
  • 12,600원 (10%700)
  • 2021-07-09
  • : 7,089



『만년』은 다자이 오사무의 첫 창작집이다. 대부분 스물 서너살쯤 집필한 작품들로 다자이의 청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쓰기까지 다자이는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혼례를 치렀다. 비합법 좌익 활동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존경하는 작가와 동생이 죽었다. 작품을 집필하고 발표하는 동안에도 그의 인생의 파란은 계속됐다. 그는 또 한 번 자살을 시도했으며 맹장염 수술 후 복막염을 일으켜 중태에 빠졌다가 진통제로 사용하던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만년』이 간행되었던 1936년에는 중독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차석을 받은 후였다. 심사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가 현재 생활에 불길한 구름” 운운하며 문학잡지에 공공연하게 써낼 정도이니, 삶으로도 작품으로도 꽤나 유명세를 치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자이는 매우 심약한 사람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면을 자꾸 보이는 주변의 인간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결국 인간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인간을 두려워하며 지옥 같은 괴로움을 겪었다.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해갈 요령이 없었기에 매사를 익살을 부리며 얼버무리는 인간이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고, 자신의 한심함을 몇 번이고 밝혔다. 그 결정체가 바로 『인간실격』이었다. 끝내 인간다워지지 못한 주인공에게 ‘실격’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치부를 모조리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소설이다.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다자이 오사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년』은 그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보여주는 책이다. 줄거리는 딱히 없지만 이야기 파편들을 한 몸인 양 늘어놓은 「잎」처럼, 책 안에 실린 열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간에게 닿기 위한 잎맥처럼 뻗어나간다.


「추억」과 「역행」을 읽으면 유소년기부터 스물다섯까지의 다자이를 그려볼 수 있다. 친구가 고향에서 도망쳐 온 연인을 그냥 돌려보내려 하기에 자신이 덜컥 배웅을 나간다거나(「열차」)나 세입자에게 일 년이나 집세를 받지 못하고 휘둘리기만 하는 모습(「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 자신을 갇혀 있는 원숭이와 같은 구경거리로 인식하는 태도(「원숭이 섬」) 등은 작가 본인이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복기」(붕어가 된 소녀의 이야기)나 「지구도」(일본에 천주교를 전도하러 왔다가 감옥에 갇히기 된 신부이야기), 「로마네스크」(최선을 다할수록 망해가는 세 사람 이야기) 같은 이야기들은 신비롭고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되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도 다자이의 성격이나 취향, 아무튼 다자이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곳곳에 등장해서 ‘역시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이구나’, 실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을 쓸 때의 그의 모습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어릿광대의 꽃」에서는 작정을 하고 본문에서 튀어나와서, 실시간으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실격』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술집 여성과 바다에 투신한 뒤 혼자 살아남은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 당시 (다자이가 투영된)요조의 심리와 그걸 쓰고 있는 작가(다자이)의 속내가 동일선상에 있는 것처럼 겹쳐지는 듯하다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결국 주인공은 주인공의, 작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미묘한 재미를 준다.


소설가 한 강을 생각하면 ‘파란 돌’이 떠오른다. 냇물 아래에 있는 파란 돌을 주우려는 모습을 그의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봤기 때문이다. 이렇듯 독특하게 반복되는 이미지는 작가 본연의 세계를 드러낸다. 독자는 작가가 쓴 무수한 문장 속에서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이미지를 주워 모아가며 작가에게 가까워지는 건지도 모른다.


『만년』은 그에 특화된 책이다. 수록된 작품들 어디에서도 다자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다자이가 일기 대신 쓴 작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자이를 읽으려면 이 책은 필수여야 한다고, 얼마 전 블로그에 썼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제, 이걸로, 끝이라며 일련의 유서에 제목을 붙이듯” 책의 제목을 『만년』으로 정했다는 말을 듣지 않았어도 나는 이 책을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필독서라고 말했을 것이다.


죽음과 좌절, 공포감이 드리워진 채 흘러가는 인생의 파란 속에서도 다자이는 세 번이나 동인지를 창간하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습작만도 백 편이 넘는다고 한다. 이백 편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회피하고 단념하기가 일상이던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던 것. 그 첫 결실이 『만년』이었다고 생각하면 책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지는 않다.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욕을 해가며 그의 글을 읽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남아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는 내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문장이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인간실격』)”, 역시 마찬가지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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