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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처럼
  • 마구아구
  • 박윤규
  • 15,300원 (10%850)
  • 2025-11-10
  • : 85
참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종종 ‘어른답게 행동해라’라는 말을 듣는다. 어른답다는 게 어떤 모습일까?
책 『마구아구』(박윤규 글, 김종도 그림)는 이 질문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한 마리의 투박한 멧돼지를 통해 답을 건넨다. 물론 삶의 답이라는 게 한 가지는 아니겠지만 이런 답을 나는 응원한다.
월악산 덕주골에 사는 마구아구는 욕심 많고 사납기로 소문난 멧돼지다. 동굴 안 가득 채운 더덕, 칡, 도라지와 밤, 도토리들은 그의 자랑이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든든한 양식이지만 동시에 불안의 원천이다. 그는 양식을 잃지 않기 위해 동굴 앞에 온통 똥 울타리까지 쳐 놓으며 경계한다.
마구아구는 “누구든 맞닥뜨리면 뾰족한 송곳니로 들이받는” 동물이며, 동굴에 “여기는 무시무시한 마구아구의 집, 들어오면 바로 죽음”이라는 팻말까지 세워 놓는다. (p.4~5)
마구아구는 내것이 매우 중요하고 내 것을 건드릴 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 뻔함을 암시한다. 함께라는 공동체보다 악착같은 자신의 생존과 독점을 선택하는 삶이다.
이야기는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양식을 지키려 애쓰던 마구아구가 결국 도둑을 잡겠다고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며 발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도둑을 찾기 위한 꾀지만, 동물들은 그저 그 행동을 ‘나눔’으로 받아들인다.
“마구아구가 이상해졌어.”
동물들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따뜻하다.
착해진 것이 아니라 속셈이 있는 행동이었음에도 나눔을 베풀기 위해 움직이는 몸은 이미 변화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드디어 마구아구가 도둑을 찾는 순간이다.
그 도둑은 거창한 악당도, 영리한 침입자도 아니다.
바로 꼬마 산양이다.
“엄마가 덫에 걸려 발을 다쳐서… 배가 고파서…”
꼬마 산양이 울먹이며 고백하는 순간, 마구아구의 눈꼬리와 목소리는 눈에 띄게 변화한다.
분노로 치켜올랐던 눈은 서서히 내려앉고, 마구아구의 기세는 꺾인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좀 달라고 하지 그랬어.”
이 문장은 단순한 용서의 말이 아니다.
마구아구가 처음으로 타인의 사정을 생각한 순간, 즉 진짜 ‘성숙’한 어른의 길로 접어든 순간이다.
우리는 종종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거나 책임을 여러 개 떠안는다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 성숙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일어난다.
교육이나 훈계가 아니라, 아주 작은 타인의 사정을 듣는 순간에 일어나는 변화다.
마구아구는 꼬마 산양을 용서하고, 남은 양식을 모두 내준다.
이때 그는 “나눠 주러 온 것”이라고 말하며 산양에게 발도장을 찍으라고 한다. 여기서 마구아구가 거짓말을 했다고 뭐라할 이 있을까? 때로는 선한 거짓말이 생명을 살린다.
나눠 주는 거 역시 어려운 너만이 아니고, 모두가 받는 걸 너도 받는 거다. 라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산양의 마음 속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는 산양에게 의지가 되어 준다.
왜 혼을 내지 않았는가?
산양은 마구아구를 보자마자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빈다. 그만큼 마구아구는 존재만으로도 잘못을 빌만큼 무서웠다. 그 무서운 마구아구의 양식을 가져갔다면 엄청난 용기와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조마조마한 시간이 어떤 혼남보다 두려웠으리라. 그것을 마구아구는 아는 듯하다.
내 마음을 가장 흔든 부분은
“배고프면 와서 말해라! 꼭.”
이 부분이었다.
배고프면 와. 이 말만으로도 산양은 고마움이 파고든다. 그런데 마구아구는 꼭을 붙인다. 마구아구는 아는 듯하다. 배고픈 시간, 그럼에도 도와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어쩌면 마구아구는 그래서 악착같이 양식을 모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꼭’ 이라는 말은 마치 보험처럼 들린다. 찾아가지 않더라도 오늘 너무 배가 고프더라도 그 말은 내내 산양에게 남아서 언젠가 정말 배가 고프고 힘들면 내겐 찾아갈 곳이 있다. 라는 것.
이 보다 더 든든한 보험이 있을까?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구아구는 영봉 꼭대기로 올라가, 지금까지 모아온 발 도장 나뭇잎들을 허공에 날려 버린다.
그리고 일주일째 누지 못했던 똥을 누며 이렇게 외친다.
“우와아! 시원하다!”
이 유쾌한 결말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구아구가 쥐고 있던 욕심과 불안을 모두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몸도 마음도 시원해진 것이다.
참 어른은 모든 걸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놓아주는 사람이 아닐까?
빠듯한 마음을 조금 비워 내고, 누군가의 사정을 들을 여유를 만드는 사람.
분노를 내리누르고 이해 쪽을 선택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금씩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참 어른은 자신의 것을 나누며 더 넓은 세계를 만나게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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