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학습의 기조 때문인지 깊은 의미나 숙고 끝에 엄선된 말의 '질'보다, 나의 주장을 피력해내는 '말빨'에 더 관심이 많은 세상인 것 같다. 그 말인즉, 글빨은 정말 우수한 사람들이 많되 굳이 할 이야기인가 혹은 잘 한 이야기인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가 있다. 2-30대 작가들 중에는 남녀의 대비 및 갈등, 불합리와 평등을 다룰 때, 자신이 성장기에 목격한 '나쁜 아빠 때문에 눈물 훔치는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쪽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기울어진 시각에서 말하는 불합리와 차별은 결국, 가부장이라는 다스베이더와 남자의 말을 잠재적 성범죄자 혹은 멘스플레인 제조기, 그 남자의 여자인 시어머니나 시누이는 '내부의 적' 혹은 배신자로 다루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에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관내분실'을 읽고 작가가 여성이란 존재를 무언가 알 수 없는 사연과 서사를 품고 있는 신비롭고 다소 신화적 존재로 여기며, 동시에 남성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이며 여성의 장애물이거나 협조하는 베이비시터 혹은 디딤돌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를 읽고나니 '그런게 아닐까?'에서 '그런게 틀림없다'쪽으로 기울었다.
'엄마' 이전의 '여자'(로서의 삶)를 추적하는 딸의 여정으로 소설을 채운 작가는 애를 낳은 무수한 '엄마들'이 여자로서의 정체를 버리고 엄마로서의 정체를 취한 '나쁜 선택'을 했다고 믿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울러 남동생이나 아버지는 무관심한 타자/목격자와 가해자/변두리인의 기능 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의 세계에서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궤도를 공전하는 돌조각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서사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현격히 결여된 이야기는 결국 '한쪽의 썰'에 불과하다. 대상작인 '관내분실'도 가작을 받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도 모두 한쪽의 썰이란 감상이다.
여성이 임신/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포기하고 경력이 단절되는 비합리적인 구조를 비판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차체하더라도 엄마가 되면 여자로서의 삶은 끝이라는 전제를 깐 것 같은 이야기를 써내는 것이 정말로 사회의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보다 여성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남녀 주인공의 성을 바꾸면, 작품에서 주로 말을 하는 나이든 여자는 주구장창 멘스플레인만 하다 끝나는 게 아닐지?
작가의 사고 방식을 떠나서 소설에 결함도 있다. 유족이 사망자의 검색정보("인덱스")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황당하다. 분골함을 맡겨놓되 고인이 누구인지 어떠한 자료도 남기지 않거나 그 자료를 지워달란 요청을 받아들이는 납골당이 존재할 수 있는가? 공동묘지에서 일반인의 묘를 '무연고자 묘'로 유족의 요청에 따라 등록변동을 해준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게다가 처음부터 '요청에 의해 인덱스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가능'한 기관이라면, 인덱스가 삭제되어 해당 유골을 분명히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하는 상태가 됨을 분실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보유의무를 진 기관이 실수로 못 찾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요청'에 의해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경우이기 때문에 요청에 따라 '검색에서 제외된 경우'에 해당하지 '분실'이 아니다. 이것은 소설 설정에 있어 매우 중대한 오류인데, 이는 작가가 어머니의 여자로서의 삶을 '분실'로 규정하고 그 말을 사용하고 싶어서 일부러 사망자 검색정보에서도 '분실'로 표기되는 장치를 사용하려 애쓴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설정을 억지로 구부려 모순이 되더라도 밀어붙이는 것은 다분히 초보적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너무 꼴보기 싫은 사진이 있어서 친구에게 내가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달라고 부탁을 해서 결국 못 찾게 되었을 때, 당신은 그 사진을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건 당신이 잃어버린 게 아니라, 친구에게 부탁해서 '찾을 수 없게 만든 것'일 뿐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소설에서 나온 바와 같이 '고객의 요청에 따라 인덱스를 제거하여 검색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합법인 상황이라면 '관내분실'은 성립하지 않고, 그냥 요청에 의해 합법적으로 '검색불가'의 상태로 만든 것일 뿐이고, 그 또한 '왜 맡기(영혼을 기록하)는 사람이 그런 요구를 하는지, 또 왜 그것이 합법일 수 있는지'에 대해 합당한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는다면 설득력이 없다. 이어진 '우리가 빛의 속도로-'도 오류가 아니냐고 꼬집을 부분이 있긴 마찬가지다. 일일히 따지기 귀찮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보여 생략한다.
잘 모르는 것과 한 쪽 입장에서만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사고력과 상상력을 초월할 때, 이와 같은 설정상의 오류가 발생하는게 아닌가 싶다.
앞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과 말빨이 좋은 것은 다르다. 이 책은 확실히 말빨/글빨과 같은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글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나 제1회 수상작들과는 감히 같은 대회의 수상작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격차가 크다.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숙고와 성찰, 타자의 서사에 대한 겸손한 시선이 빛의 속도로 분실되는 세상이다. 새로운 휴대폰이 나오는 속도를 더 나은 소설이 나오는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 책의 수록작들도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은 죄가 될 순 없는 일이다.
1회 수상작품집보다 조금 얇은 것 같은데 뛰어난 기성작가들의 초청작이 수록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