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니구치 지로 지음, 신준용 옮김 / 애니북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누구나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이었다.

 

훗날 부모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겨우 알게 된다.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 다니구치 지로. 그의 부고를 몇 달 전 접하게 된 후, 가장 먼저 떠올렸던 작품이 바로 <아버지>였다.

 

 사실 나는 만화 <신들의 봉우리>를 통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그 작품을 시작으로 다니구치 지로의 전작을 거의 다 읽은 듯 하다.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지만 작가 특유의 담백한 표현이 어쩌면 여타의 화려한 작품들 보다 훨씬 더 가슴에 와닿는 이유인것 같다.

 

 특히 이 작품 <아버지>는 시대와 나라가 다름에도, 작가 본인의 경험을 빗대어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것 처럼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어쩌면 이제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나이가 되어서 일 수도, 혹은 그 즈음 장인어른의 장례를 치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흔한 사위와 장인의 관계처럼 데면데면 했던 나로선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장인어른과 처가에 대해 그전에 알고 있었던것 보다  훨씬 많은 것 들을 며칠 간의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되었다. 그 상황은 나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었고, 아내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자식에게 부모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작 중 주인공 요이치의 외삼촌이  " 부모를 생각 안하는 자식은 있어도 자식을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라고 말한것 처럼 말이다.

 

 고향을 떠나서 서울 생활을 하고있는 나로서는 주인공 요이치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15년 간 고향도, 아버지도 잊고 도쿄에서의 삶 만을 고집했던 주인공 처럼 나 역시 그러했다. 일 년에 두 번있는 명절조차 이런 저런 핑계로 내려가지 않았던 나의 기억이 고스란히 주인공의 감정에 겹쳐보였다. 부모의 존재와 고향의 존재가 그 시절 요이치에게  어떻게 위치했는지 말이다. 작가는 후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

 

 

 " 나는 꽤 오랫동안 고향 돗토리에 내려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려간 게 언제였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오랫동안...

 무슨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내려가지 못한 게 아니다. 실제로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실은 그냥 내려가기 귀찮아했던 것뿐이다.

  나는 막내로 태어났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형님 부부가 모시고 있다. 무책임한 말이겠지만, 내게 고향은 돌아가지 않아도 그뿐인 그런 곳이었다.

 정말이지 나 같은 불효자식이 또 있을까! "  (p. 276)

 

 

 작가의 말처럼 실제 바쁘기도 했지만, 아니었어도 내려가지 않았을 마음 말이다. 작가 지로가 그랬고, 요이치가 그랬던 것 처럼 나 또한 그랬다.

 

 요이치의 누나가 사별 후 본가로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돕게 되자 가업을 이어가야 된다는 마음의 짐을 어느정도 내려놓게 되었다는 대목에선, 나보다 먼저 결혼하고서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생의 존재가 겹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자식이었다. 고향과 부모보다 내가 하고싶은 일이 먼저였던 그런 자식...

 

 요이치가 그랬던 것 처럼, 나 또한 결혼을 하고 나서야 고향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생부부와 조카, 부모님을 보고서야 시간이 꽤 많이 흘렀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이치 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알게 되어 눈물짓게 되는 일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겪지 않았지만, 우리세대의 많은 자식들이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어린 시절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모자란 아버지와의 시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앞서는 마음. 부족한 이해와 오해에서 오는  미움, 악감정, 무관심 등등 말이다. 

 

 이르면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혹은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경험하고서, 아니면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고 나서야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는것은, 우리 세대의 철없음일까. 아니면 아버지 세대의 숙명일까.

 

 요이치처럼 뒤늦은 후회를 하고 싶진 않다. 아직은 건강하신 부모의 존재와 언제나 갈 수 있는 고향의 있음을 당연시하기 보다는 소중하고 고마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 우리들은 항상 철없는 자식들이기에 결국은 또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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