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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ㅣ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1.
소개가 불필요한 과학자랄까요. 그동안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을 여러 번 소개드렸는데 오늘 소개드릴 책은 그의 자서전입니다. 사실 리처드 도킨스라면 평전보다는 오히려 자서전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단연 그의 수려한 문장 때문이겠지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도킨스의 신랄한 현실인식과 시종 유려하고 아름다운 그의 문장들을 지켜봐 온 독자라면, 그의 자서전에는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드릴 그의 자서전 2권은 그 기대를 완벽하게 채워줄 것이라 자신하는 것이므로....
2.
사실 자서전이라는 기획 자체는 제 취향 밖의 일이나 그것이 리처드 도킨스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거의 유일하게 자서전을 읽고 싶은 작가였달까요. 오늘 소개드릴 책들은 국내 번역상 시리즈물을 연상케 하지만 사실 원어로는 전혀 다른 제목을 달고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엮은 이가 서문에서 설명하고 있다시피, 이미 도킨스의 전작들이 의역으로 출간되었기에 온전히 원어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서문에 번역자가 관련 부분을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디까지나 연대기 순으로 1,2 권이 적확히 나뉘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권의 경우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한 후 35세까지의 인생 전반부를 다루게 되고, 2권의 경우 십여 권의 책을 추가로 낸 후 수많은 매스컴에 등장한 도킨스의 인생을 다룹니다. 단연 학술적으로도, 인생 자체에 있어서도 훨씬 담은 것이 많은 그의 후반부 책이 1.5배 가량 두껍습니다.
책이 두꺼운데 그간 그의 전작들을 다루고 있느냐. 도킨스는 직접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쓴 책들의 내용을 여기서 시시콜콜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책들은 아직까지 단 한권도 절판되지 않았으니 여러분이 그 책들을 직접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3.
앞 부분은 확실히 에너지를 응집하는 과정이라 도킨스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옥스퍼드 대학재학 시절로 넘어가면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허레허식없이 스트레이트로 톡톡 쏘는 그의 문장들과 지적쾌감을 시원하게 선사합니다. 그리고 학부시절을 겪은 학생들이라면 꼭 공감이 아니더라도....도킨스가 묘사하는 장면들이 시대를 넘나들며 머릿 속을 헤집어 놓게 되는데 그건 정말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더군요. <이기적 유전자>를 출판하는 과정에서의 일들을 다루는 대목은 특히 발군입니다.
나는 옥스퍼드가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는데, 정확하게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만의 특징인 튜터(개인 지도) 제도라고 해야 한다. 옥스퍼드의 동물학 전공 과정도 당연히 강의와 실습을 제공했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 딱히 더 낫지는 않았다. 좋은 강의도 있고 나쁜 강의도 있었다. 어차피 내게는 상관없었다. 아직 강의를 듣는 목적을 깨닫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강의는 정보를 흡수하는 자리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했던 행동(거의 모든 대학생이 하는 행동), 즉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노예처럼 공책에 받아적기 바쁜 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복습할 때 필기를 참고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실제로는 공책을 다시 열어본 일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랬을 것이다. 강의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강의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자극해야 한다. 훌륭한 강사가 말로 생각을 펼치고, 반추하고, 숙지하고, 다른 표현으로 더 명료하게 만들고, 주저하고, 그러다가 덥석 붙잡고,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하고,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지는 모습. 우리는 이런 모습을 모델로 삼아서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법과 그 주제에 대한 열정을 남에게 전달하는 법을 배운다....
4.
2권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35세 이후의 이야기들을 다루게 됩니다. 현대의 성취들과 출간물의 배경 등을 거침없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특히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웬만한 소설보다 높은 가독성을 보이는 파트예요. 평생을 티격댔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의 일화가 소개되기도 하는데요. 도킨스가 그를 스티브라 부르며 사적인 조언을 드딕도 하고, 과학사에서 보기 힘든 공존을 수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뜬 그와 다시는 논쟁할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슬쩍 꺼내들기도 하고요.
많은 경우 유전자의 효과는 특정 결과가 발새을 통계적 확률을 아주 약간만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헌팅턴병 같은 두드러진 예외를 제외하고는, 특정 유전자가 특정 결과를 높은 확률로 결정해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유전자를 비롯한 다른 많은 요인과 상호작용을 해서 결정한다. 우리는 특히 어떤 '질병의 유전자'를 이야기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p395
이처럼 생명공학에 관한 얘기도 쉽게, 도킨스의 필체로 풀어쓰고 있는 책이므로 지적 체계를 정립하는 데도 훌륭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덤. 확실히 한 과학자의 일대기를 소설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학부과정을 겪고 있는 대학생들, 혹은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큰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하물며 리처드 도킨스를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그의 이론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얼마간 너무나 즐거운 독서경험을 선사할 책입니다. 정말 강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