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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ㅣ 스토리콜렉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에서도 '미미여사' 로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입니다. 장편이라고 하기엔 살짝 짮고 그렇다고 단편이라고 하기엔 또 두꺼워서 작가도 이것을 장편이라고 해야할지 단편으로 넣어야할 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미미여사의 '모방범'은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는데 R.P.G.를 먼저 읽게 되었네요. 작가의 문체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깔끔하고 깨끗합니다. 즉, 단숨에 읽어내려가기 좋습니다. 챕터도 적절한 곳에서 끊어주는가 하면 이야기의 흐름과 구조가 아주 적절한 타이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엄마와 딸이 있습니다. 그리 단란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나름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의 죽음을 수사하던 경찰들은 그가 바람끼 많고 외로움을 잘타며 실제로 여러 여자들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또한 온라인 상에서 아바타같은 가족을 이루어 채팅과 오프라인 모임까지 한 사실을 알아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이 모여 아바타의 세상을 즐긴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딸(극중 가즈오)은 기겁합니다. 안그래도 소원해진 사춘기 딸에게 아버지의 행동들은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R.P.G는 role playing game의 약자입니다. 즉 역할 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소설안에서의 소재인 가족 아바타 놀이도 역할 놀이라고 볼 수 있고, 또 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방법도 역할 놀이로 진행됩니다. 이 소재 자체가 스토리에 커다란 힘을 부여하는데 과연 작가의 능력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현대 사회의 가족에 대한 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이지만 각자가 모두 너무나 외로운 삶을 살고 있고, 그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정관념 속의 가정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아서 어떻게든 그 이상향을 찾고자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과연 누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인지 추리를 해가는 과정이 사뭇 긴장되고 재미있습니다. 역할 놀이를 즐겼다는 이 남자가 참 신기하기도 하고요. 극중에 나오는 캐릭터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인상이 강해서 캐릭터를 즐기는 재미도 제법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들 외로워. 현실 생활 속에서는 그 누구도 도저히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진정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독한 거야. 마음을 이어줄 끈이 필요해. 그렇기 때문에 너도 아버지에게 현실의 아버지가 주지 않는 것을 바라고 접근한 거잖아. 장난치려고 했다는 말은 허세야."
p.149
가즈미는 말했다. 인터넷 속의 가족놀이는 즐거웠다고.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고. 소중했다고. 어머니도 말했다. 그곳에서 고독한 인생을 위로해주는 상대가 있었다고. 미노루가 삐딱하게 굴면서도 '가족'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도 '말이 통하는 아버지도 좀 있었으면 했다'라는 소소한 꿈을 그곳에서라면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p.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