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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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계속 이어져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나이는 많아지고 있지만 더 확실해 지는 것은 없다. 돌아보면 길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문제보다는 변하지 않는 내가 더 문제임을 깨닫는다. 루쉰, 그는 사람들이 자각하고 스스로 혁명하는 것만이 진정한 혁명이라고 했다. 나의 눈은 나의 외부를 비추고 있고 귀는 외부로 열려있다. 타인의 문제점이 더 잘 보이고 타인의 험담이 더 잘 들어온다. 어쩌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지고 녹음한 나의 목소리는 더 낯설게 느껴진다. 나를 보는 눈과 귀는 어디에 있는가? 나를 더 예민하게 주시하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일까. 루쉰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너는 아Q라고.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정시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기합리화를 해버린다. 루쉰은 아Q를 통해 사람들의 비루하고 비열한 모습의 끝판을 보여준다. 루쉰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몸이 따끔따끔하고 화끈거리면서 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루쉰의 언어는 단순하지 않다. A를 말하는 것인지 B를 말하는 것인지 둘 다를 말하는 것인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인지. 특히 그가 살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 당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같은 글을 여러 명이 읽어도 각각 다른 해석을 할 때가 있고 벽에 부딪친 느낌이 들 때가 여러 번이다.

루쉰을 읽는 사람에게 기적과 같은 책이 나왔다. 루쉰, 길 없는 대지^^ 한 때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하셨으나 각자의 공동체에서 공부를 하시고 있는 저자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다시 루쉰을 읽고 함께 작업을 하신 책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만난 루쉰을 함께 연결하는 공통의 작업. 더구나 미친 듯이 더웠던 2016년 여름에 중국을 종단하는 여행을 하여 낸 결과이니 미친 책 내지는 기적과 같은 책이 맞는 것 같다. 루쉰이 살았던 시기와 유사하게 길 없는 지금 시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자들이 읽었던 루쉰과 참고 도서들을 곰씹고 루쉰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루쉰의 텍스트를 파헤친다. 루쉰에게 다가선다. 저자들의 머리와 몸으로 부딪친 루쉰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루쉰과의 시대적 공간적 거리감을 메꿔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루쉰의 살았던 공간을 뒤쫓아 가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루쉰의 작품과 저자들의 날카로운 해석을 읽다보면 3종 세트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이토록 재밌고 친절한 평전이라니. 처음 루쉰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루쉰을 읽었던 사람에게도 선물 같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루쉰의 언어를 듣고 길을 내야 하는 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루쉰에게 다가가는 사다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자신의 혁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을 통해서 끈질기게 루쉰의 언어를 들어야 한다. 관념의 언어가 아닌 실존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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