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충좌돌 - 중도의 재발견
김진석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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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논리가 전 사회를 지배한다. 패하면 곧바로 잊혀지거나 사라진다. 시장만이 아니다. '승자 독식'의 원칙은 공론장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50년 만에 이뤄진 여야의 수평적 교체와 IMF 환란,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논객 시대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찬반과 가부, 양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들은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논박하며 시비의 잣대를 들이댄다. 대표선수들이 벌이는 전쟁에 물러섬이란 없다. 근거를 갖춘 주의주장이 고집으로 이어지는 건 나아감만 알고 물러섬을 모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성이 토론에 투영되면서 합의가 발붙일 공간은 찾아 보기 힘들어졌다. 

김진석은 합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는 저자다. 좌우 대결 구도로 고착화된 정치사회적 논쟁 구도 속에서 그는 중도에 입각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기우뚱한 균형'을 찾기 위한 그의 우충좌돌은 우파적 힘의 논리와 진보의 타성적인 이념과 부딪친다. 우파의 부끄러움과 좌파의 힘의 균형에 대한 무지가 극단적인 대치를 이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사이에서 '구체적인 삶의 풍경', '실재의 얼굴과 몸짓'을 찾자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보수와 진보란 이분법에 가려진 세상에서 중도의 길 찾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좀 더 세밀하게 정치적 정체성을 가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진보의 몸집 불리기로 경계가 흐려졌다. 중도와 좌파를 아우르는 부풀려진 진보와 좌파적 입장에 근거한 좁혀진 진보와의 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보가 "끊임없이 타자를 배제하면서 자신에게 밑줄을 쫙 그으려는 이념적 기표 혹은 이념적 판타지"라 규정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지지하면서 실생활에서는 "경제뿐 아니라, 교육적·문화적·상징적 자본을 축적"하는 '강남좌파'는 진보의 판타지 대신 중도나 리버럴이라 표현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정치와 윤리 사이에 틈과 균열을 인정한다는 것만큼 사실적이다.

등록금 문제, 대졸자 주류 사회, 복지 담론의 점검,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경제, 신자유주의 찬반, 경쟁 등 최근래 첨예한 대립을 이룬 사안들 속에서 저자는 우파의 과도한 이기주의와 부딪치고 좌파의 관념적인 경직성과 독단, 위선에도 부딪친다. 개인적으론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곤욕스러울 때도 있었다. 가끔은 말 그대로 우충좌돌만을 위한 문제 설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양비론이나 양가론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토론을 전쟁으로 착각할 때, 좀 더 나은 미래는 미뤄질 수밖에 없다. 고금의 윤리학자들이 떠받든 '중용'의 가치는 우충좌돌처럼 지난한 사변의 과정이다. 이 책은 극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적 안일함을 일깨워준다.


덧. 강준만의 『강남좌파』와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강남좌파' 현상을 두고 사회과학자와 철학자가 갖는 태도의 차이점이나 동일함을 느끼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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