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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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물성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는 ‘적절한’ 양과 질이 갖추어진 공간이 필요하다. 교오양 있는 현대인으로서 천부인권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려면, 그 어떤 인간이라도 적절한 공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쫓겨나는 삶을 간신히 버텨낸다. 심지어 그 넘들은 종종 남들이 의식조차 않고 점유하는 공간과 불화하고 부대끼던 나머지, 누가 먼저 축객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그 공간에서 꺼져 주기까지 한다! 모든 공간을 박탈당하는 삶, 모든 공간에서 배제되는 삶, 공간을 상실한 삶이란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모든 ‘공간 상실자’는 생존자이고, 그들의 생존기가 곧 투쟁의 역사이다.


그래도 저자 이반지하는 줄곧 끼어버리고, 밀려나가고, 비틀거리며 헛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와중에도 절대로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공간 상실자인 관객이라면 으레 그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내내 폭소를 주체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반지하와 그 넘들은 여전히 슬프고 화나고 서럽고 (몸 또는 마음이, 실은 대부분 둘 다) 아프고, 자신이 왜 공간을 끊임없이 박탈당해 왔으며 그것이 어째서 부당한지를 분명히(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만) 알고 있다. 그리고 이반지하가 예술 활동과 저술 활동으로 선사하는 웃음은, 이 사실을 예리한 송곳처럼 찔러 댄다.


책의 말미에서 이반지하는 자신을 밀어내는 정상사회의 공간을 점거해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그 넘들은 이제 곧 정상사회의 곳곳을 무단점거하고, 정상사회가 공간에 그어 둔 온갖 구획을 이리저리 무단횡단하며 정상 인간들을 화들짝 놀라게 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비장한 선언을 하기 이전에도 꾸준히 그리하던 넘들이 있기는 하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정상 인간들은 정말로 그 넘들과 달리 ‘빈곤의 공간’과 ‘공간의 빈곤’ 같은 문제 따위는 전혀 겪고 있지 않단 말인가? 정상 인간은 이반지하의 으타벅스 이야기조차도 공감할 수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 넘들의 발버둥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 글은 창비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증정받고 작성하였습니다.

나, 평생을 집에서 도망치며 살고 있나.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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