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탕진하다가
세계를 지워버리고 사라지는 이의 언어
70년대의 펑크는 90년대 얼터너티브록에서 부활한다. 너바나Nirvana는 얼터너티브록을 대표하는 밴드다. 그리고 너바나에는 커트 코베인Kurt Cobain(1967~1994)이 있다.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은 “천천히 사라지기보다는 한꺼번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느니 지금 내 모습으로 미움받는 게 낫다”라고 휘갈기면서, 어른이 되고 사랑을 받고 노년의 평화를 긍정하는 ‘정상인’이길 거부했다. 대신 그는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자살한다.
수많은 걸작을 남긴 커트 코베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은 ‘10대의 정신’의 투명함과 예민함을 펑크의 거칠고 강렬한 리듬에 얹어 표현했다. ‘틴 스피릿’은 그 당시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던 탈취제였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10대의 정신이 느껴져”와 “틴 스피릿을 뿌렸구나”란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커트 코베인은 ‘10대의 정신’이란 단어의 진지함과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인공적인 냄새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상품의 가벼움 사이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전략을 취한다.
세상을 비판하는 일은 너무 도덕적이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진부하다. 그저 이런 사회에 내던져진 자신의 무력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전념하자. ‘틴 스피릿’을 감동적으로 노래하길, 미래의 꿈을 짊어진 청소년들의 희망을 노래하길 원하는 사회에서 “틴 스피릿을 뿌렸구나”라고 농담조로 반격하는 것.
커트 코베인이 미약한 힘으로 견지한 싸움의 전략일 것이다.
거칠고 강렬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공연장의 뜨거움에 빠져드는 것이 중요한 록 음악에서, 가사는 큰 의미가 없다.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은 4개의 단순한 코드로 이루어진 아주 느리고 몽환적인 도입부의 멜로디, 너바나 음악의 형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타의 강력한 디스토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커트 코베인의 절규하는 것 같고 읊조리는 것 같은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내게 커트 코베인의 가사는 탁월한 ‘시’이다. 자신을 탕진하다가 세계를 지워버리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휘갈기는 언어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
Load up on guns and bring your friends
It's fun to lose and to pretend
She's over bored and self assured
Oh no, I know a dirty word
총을 장전하고 네 친구들을 데려와
게임에서 지고, 진 척 연기하는 것은 재밌지
그녀는 너무 지루해하고 콧대가 높아
오 안 돼, 난 더러운 단어를 하나 알고 있어
Hello, hello, hello, how low?
Hello, hello, hello!
With the lights out, it's less dangerous
Here we are now, entertain us
I feel stupid and contagious
Here we are now, entertain us
A mulato An albino A mosquito My libido
안녕, 안녕, 안녕, 얼마나 더 밑으로?
안녕, 안녕, 안녕!
불이 꺼졌어, 불이 꺼진 게 덜 위험하지
우린 지금 여기 있어, 우릴 재미있게 해 봐
난 멍청하고 병균 같아
우린 지금 여기 있어, 우릴 재미있게 해봐
물라토, 알비노, 모스키토, 나의 리비도

미친 말, 감각의 말, 시적인 말, 미래가 없는 말
직전에 한 말과 논리적으로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다음 말을 이어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노래는 의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처럼, 신경의 경련만 남은 벌레처럼, 수신자가 누구일지 알 수 없는 암호문처럼, 제 말에 갇힌 자폐아처럼 뒤죽박죽이다.
커트 코베인의 말은 미친 말, 감각의 말, 시적인 말, ‘지금’의 말, 미래가 없는 말이다. 소통, 전달, 의미를 거부한 채로 자신의 욕망, 감각, 순간을 재현하려고 하는 말이다. 저 가사에는 의미 있는 세상에 질려버린, 세상의 무의미를 느끼고 감각하는, 권태와 허무에 질식한 소년의 감각, 예민함이 들어 있다. 사회가 자기 존재를 먹어버리고 자기 삶을 빼앗는 데 저항하는 이들은 ‘무의미’를 선택하려고 한다. 무의미에는 의미를 뭉갤 힘이 있다. 그런 무의미를 견딜 수 있는 자들은 의미 있는 세상에 기여하기보다는 저항함으로써 자신이 본 진실에 충실하려고 한다.
“난 최선을 다할 때 더 나빠져 있어.”I'm worse at what I do best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현대인을 억압하는 강박, 사회적 요구 중 하나이다. 자신의 가장 긍정적인 에너지를 뽑아내고 성공하고 인정을 받는 것, 그것만큼 삶의 ‘의미’가 또 있을까. 화자는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 자신이 더 나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이 비정상적인 회로에서는 최선을 다하면 더 나빠진다. 타인들과 공유하기 어려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재능은 '예술가'가 받은 축복이다. 그들은 예외적 개인이고 ‘작은 무리’이다. 하지만 세상의 상식과 반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축복받은 존재로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물라토, 알비노, 모스키토, 나의 리비도가 세상이 망할 때까지는 망하지 않을 것처럼.
*그는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Nevermind(신경 꺼)”라고 내뱉는다. 1991년에 발표된 너바나 2집 <Nevermind>는 1970년대 펑크 1세대를 대표하는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 앨범이자 유일한 앨범인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이윽고 노래는 허무주의자들의 정언명령인 부정으로, 안 하기, 없애기, 거부하기, 그리고 사라지기로 뒤덮인다.
따라야 할 의미도, 가치도 없는 세상에서
말을 갖고 놀기
커트 코베인의 노래들은 대체로 이런 상태와 감성을 유지한다. 커트 코베인은 따라야 할 의미도 가치도 없는 세상에서 말을 갖고 논다. 그는 음악이라기보다는 노이즈에 가까운 공연을 하고, 공연 마지막에는 사용한 악기들을 부수고,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거나 썩소를 날리길 즐겼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계속 살아가는 길에서 빠져나와 무로 사라졌다. 탈취제 ‘틴 스피릿’이 허공으로 날아가듯이. ‘틴 스피릿’의 가벼움으로 ‘10대의 정신’을 조롱하고 삶의 무의미를 주장했던 예민한 청년은 허무를 향해 돌진했다.

4월 출간 예정인『불구의 삶, 사랑의 말』(가제)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책이 당신에게 가수, 시인, 작가, 예술가가 될 기회를 열어주기를.
당신의 표정 없는 얼굴을 흔들 바람이 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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