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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인형 ㅣ 미운오리 그림동화 2
라리사 튤 지음, 레베카 그린 그림, 서현정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2월
평점 :
소설가인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베를린에 살던 어느 날 공원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소녀가 인형을 잃어버린 사실을 안 카프카는 인형이 편지를 남기고 여행을 떠났다며 이야기를 지어낸다. 카프카는 그날부터 집에서 인형 대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소녀를 달래려는 카프카의 '대필'은 3주 동안 이어졌다. 이 일화는 그의 연인이었던 폴란드 여성 도라 디아만트의 1948년 회고록에 나온다. 인형의 주인인 소녀와 카프카의 편지는 아직까지 찾지 못해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있다.
소설 속 캐릭터가 만든 카프카는 "세상 물정 모르고, 신경증이 있으며, 내향적이고, 병든,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것을 만들어내는 남자, 일종의 외계인"의 이미지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그의 작품처럼 카프카도 엄숙한 성격이었을거라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유쾌하고 매력적인 카프카의 모습을 말해주는 듯한 이 일화에 마음이 끌린 글작가 라리사 튤은 인형에게 '숩시'라는 이름을 주고, 카프카의 썼을 편지의 내용을 상상하여 엮는다. 일상의 친근한 장면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따뜻한 색채와 동화적인 상상력을 더해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내는 레베카 그린은 친절한 카프카의 모습과 호기심 많은 소녀, 그리고 소녀의 인형을 사랑스럽게 그려내었다.
베를린의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울고 있는 여자 아이를 만난 카프카. 인형이 사라져서 울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수지다. 그리고 수지의 인형은 숩시라는 이름. 카프카는 아이에게 숩시가 여행을 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수지에게 편지도 썼다고 말한다. 지금은 깜빡하고 집에 놓고 왔지만 내일 편지를 가져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자신은 인형들의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라고 소개하면서 말이다. 카프카가 배달하는 숩시의 편지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이 가득하다.
그림에는 숩시의 편지가 등장하고, 이야기의 본문에서는 숩시의 편지에 대해 카프카와 아이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 장면들 속에는 카프카가 손수건을 꺼내 기침하는 장면이 계속 등장한다. 실제로 카프카는 결핵에 걸려 사망했다. 그림책 속 편지의 시작은 1923년 10월, 그리고 마지막 편지는 1923년 11월.
마지막 편지와 공책을 건네며 카프카는 아이에게 "어딜 가든 공책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렴. 그러면 네 모험이 영원히 남을 거야" 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차가운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간다. 하나의 숨은 즐거운 놀이와 모험을 찾아갔지만 나머지 하나의 숨은 오래지 않아 꺼지고 말았다. ( 카프카는 이듬해인 1924년 사망했다. )
마지막 페이지에 나와있는 여자 아이의 성장한 모습은 인형의 편지 속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감동을 준다. 아이의 가방 속에 카프카의 소설이 담겨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변신(Metamorphosis)」 과 카프카가 건넨 빨간 표지의 공책이 담겨있다. 카프카가 건넨 말을 잊지 않고 어딜 가든 '공책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는 모습. 카프카의 여행은, 카프카와 아이의 인형의 여행은 이제 성장한 아이의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