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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50
인고 발터 지음, 김주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탁. 책장을 덮은 뒤에도 후련한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여느 소설을 읽은 때처럼 독후감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마음은커녕 내가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폴 고갱에 대해 평가를 하고 그 사이 억지스러운 글을 쓰면서 폴 고갱에 대해 다른 생각과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유는 오늘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이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평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렇다고 폴 고갱이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남자여서 내가 오늘까지 서평을 쓰기를 미뤄뒀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미술을 알지 못했고 나는 지금도 미술에 문외한이다. 고작 반 고흐에 관련된 책 몇 권 읽었을 뿐이고 그것도 반 고흐의 삶을 요약하기에는 너무 얇고 가벼웠다. 그러나 내가 반 고흐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반 고흐의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으며 반 고흐의 그림도 몇 천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고흐의 성격에 대해 동정심과 이런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고흐에 의해 귓불이 잘린 폴 고갱이란 인물에게 가벼운 동정심을 느꼈다.
동정심이라고! 나에게 <달과 6펜스>에 그려진 찰즈 스트릭랜드에겐 증오가 한껏 묻어나왔다. 보통 사람이 그냥 처자식 버리고 이상을 향해 떠나갔다면 나는 그에게 정강이를 힘껏 후려차고 가뿐해질 정도의 증오를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뭔가, 찰즈 스트릭랜드란 작자는 그렇게 어이없이 모든 걸 버리고 떠났고 사람들은, 적어도 몇 명의 여자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 사람이 사랑받을 작자인가!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이 사람의 그림이 지금 많은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에 분개했고 미웠다. 왜 사람들은 그를 버리지 못하는가! 가슴 속은 질투심으로 쓸쓸히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달과 6펜스>는 소설이므로 픽션이 과장되게 섞여 있을 수 있고 소설을 흥미롭게 전개시키기 위해 고갱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망가뜨린 것이 아닐까. 분노! 분노! 고갱은 누굴까. 찰즈 스트릭랜드와 다르길 바라고 바라며 때론 그를 나조차 용서하게 될까 두려워하며 책장을 열었다.
나는 서평단이다. 운 좋게 아무 개인 비용 없이 <폴 고갱>이란 책이 내 손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대가로 2주 이내에 서평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 기한의 마지막 날이 오늘이다. 크리스마스! 아마 내가 긍정적인 평가를 하여 내 글을 본 사람 두 명 이상이 이 책을 구매하게 되면 나는 나에게 공짜로 굴러 온 이 책의 값을 제대로 치른 셈이 될 것이다. 내 글을 보고 실망하여 이 책을 사기를 단념했다면 나는 배은망덕한 인간이 될 것이고 출판사에겐 작은 손해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본 자들이 이 책을 가뿐히 구매할 수 있도록 급히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정을 다루는 일은 이 책을 한 번 더 읽은 뒤 오늘이 아닌 다른 날에 해도 되기에. 그 쪽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적어도 이 책을 구매할 마음으로 별점이 높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클릭한 사람에게라면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정을 읽은 뒤에는 내 서투른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 개에 환하게 웃으며 이 책을 구매 할 테지만 그이의 생각은 한정된다. 자물쇠를 채우듯 그렇게 잠긴다. 분노와 두려움에 시작했던 나의 고갱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건 심한 노파심일까.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책을 읽은 난 고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ㅡ모르겠어.
솔직한 심정이다. 난 남에게 보여줄 생각도 스스로 간직하고 있을 생각도 가지지 못했다. 고갱이란 사람에 대해선. 책 표지 뒤의 그의 비열한 캐리커처에 나도 역시 비열한 웃음을 흘릴 뿐이다.
분노도 사랑도 미움도 동경도 느낄 수 없는 고갱에 대해. 난 다시 씁쓸한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