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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그 고리대금업자, 관리의 미망인 노파 살인 사건 말이야... 지금 칠장이가 말려들었어..."
"그 살인 사건에 대해서라면 너한테 듣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 조금은... 또 어떤 일 때문에... 신문에서도 읽었지! 그런데..."
"리자베따도 죽였어요!"
나스따시야가 라스꼴리니꼬프를 향해서 갑자기 입을 놀렸다. 그녀는 방에 남아, 문 가에 기대서서 내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리자베따를?"
라스꼴리니꼬프는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리자베따, 물건 팔러 다니던. 기억 나요? 여기 아래층에도 다녔잖아요. 당신 셔츠도 고쳐 주었고요."
라스꼴리니코프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누렇게 바랜 더러운 흰 꽃무늬 벽지에서 밤색 선으로 그려진 못생긴 흰색 꽃을 한 송이 골라, 그 꽃에 잎이 몇 개나 있는지, 잎 가장자리의 톱니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선은 몇 개나 그려져 있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팔다리가 마비되어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볼 생각조차 못하고, 고집스럽게 꽃만 응시했다. (196~197p)
전당포 노파를 죽인 라스꼴리니꼬프가 살인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침대에 누워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벽지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이 부분. 방금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필사적으로 태연을 가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이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이 장면이 나를 완전히 압도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