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비밀 컬렉션~( ͡° ͜ʖ ͡°)
만약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작가가 ‘야설’을 썼다고 상상해보자. 기존에 썼던 작품들과 다르게 작가의 ‘야설’은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노골적인 성 묘사로 가득하다. 책 표지 앞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던 열혈 독자라면 상당히 난감하다. 작가의 문학성을 믿고 야설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일부 독자는 삼류 작가의 펜에 나오는 졸작이라고 비난하면서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미라보 다리’라는 시로 유명한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무명시절에 야설을 쓴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아폴리네르는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는 소설을 5편이나 썼는데 현재 전해내려 오는 것은 단 두 작품이다. 이 두 편의 소설은 아폴리네르가 작가로 정식으로 등단하기 전에 출간된 것이다.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Les Onze Mille Verges)과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Les exploits d’un jeune Don Juan)은 아폴리네르가 26살 때 썼고, 이듬해에 ‘G.A.’라는 익명으로 비밀 출판되었다. 두 작품 다 내용이 파격적이다. 등장인물들의 섹스 장면은 수없이 나온다. 인물들 간의 대화에 남녀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의 표현과 묘사가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보다 강도가 세다. 사디스트, 매저키스트, 남색, 레즈비언 심지어 시체선호증, 분뇨선호증까지 하드코어한 섹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폴리네르는 이 두 작품을 집필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무명시절에 비밀 출판된 야설은 소수의 독자만 읽을 수 있는 한정판이었기에 작가 본인은 작가 이력에 남을만한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작가로서의 명예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언급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은 모니 비베스퀴라는 비도덕적인 주인공이 등장해 자신의 애욕을 마음껏 발산한다. 얼핏 사드 후작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당시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어느 비평가가 사드 후작을 능가하는 작품이라고 평을 할 정도로 정상적이지 않은 섹스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사실 아폴리네르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사드 후작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아폴리네르가 처음으로 사드의 작품을 발굴하고 다시 출간했다. 그만큼 이 작품도 사드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 작품에서 열차 안에서의 난교 파티 장면은 가장 충격적이다. 사디즘, 시체선호증, 분뇨선호증 묘사가 나오는데 이 장면은 쪽수만 해도 열 페이지 정도 된다. 작가가 직접 광기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처럼 표현 수위가 높다. 소설 중간에 아폴리네르는 짤막한 시를 넣기도 하는데 ‘미라보 다리’의 시인답지 않게 야한 표현이 가득하다. 열차 난교 파티 장면을 단 두 줄의 시로 표현한 내용이 있는데 상상은 여러분 독자에게 맡기겠다.
기차는 기분 좋게 덜컹거리고
우리네 골수(骨髓)까지 욕망은 밀려오네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은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에 비하면 표현 수위가 낮은 편이다. 로제라는 소년이 성적인 성숙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겪은 욕정의 순간들을 옛이야기 들려주듯이 방식으로 독자(특히 남성 독자)에게 들려준다. 어린 소년 로제는 벌써 섹스에 눈을 떴다. 벌거벗은 여체만 보면 환장을 한다. 자기보다 열 살 이상 많은 하녀부터 친척 큰누이까지 모든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고, 심지어 임신한 여성도 로제의 대범한 불장난을 피하지 못한다. 여기서 로제가 유일하게 성관계를 맺지 않은 여성이 있으나 그의 어머니다. 이 소설에서 로제의 어머니 또한 색을 엄청 밝힌다. 일본 에로물 소재이기도 하는 모자(母子) 간의 근친까지 묘사되었더라면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아무튼 로제는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소설은 막장으로 전개하다가 막장으로 끝난다. 마지막에 로제는 자신의 여자 정복을 조국의 인구를 늘리는 애국 활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더 만들 거라고 다짐한다. 여성 권리가 많이 신장된 요즘, 이런 소설이 나왔다간 비난의 몰매를 맞았을 것이다.
자신의 성적 욕구 충족을 인구를 늘리기 위한 의무로 자기 합리화하는 로제의 인식을 옹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폴리네르가 살았던 유럽의 인구 비율을 생각한다면 그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가벼운 유머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폴리네르의 출산 장려 생각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희곡 작품 『티레시아스의 유방』(연극과 인간, 2004년)에서도 출산을 권장하는 대사가 나온다. 이러한 텍스트의 유사성은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이 아폴리네르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에 에공이라는 잘 생긴 남자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몸에 말뚝이 박히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엽기적인 장면은 훗날 아폴리네르의 또 다른 작품에 재등장한다. 『이교도 회사』(문학수첩, 1999년, 절판)의 세 편으로 구성된 단편 「세 개의 천벌 이야기」 중 제1편(제목: 미소년)에 미소년이 쇠창살에 박힌 채 성적 희열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폴리네르의 야설은 성귀수의 번역으로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이 함께 수록된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년, 절판)으로 출간되었다. 『이교도 회사』와 함께 아폴리네르의 소설이 소개되었는데 재미있게도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에 4편의 서평이 있고, 『이교도 회사』는 서평이 단 한 편도 없다. 역시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표시가 적힌 책에 더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문학수첩의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이 출간되었을 때 『신역 돈쥬앙』(픽션뱅크, 1999년, 품절)도 나왔다. 이 작품도 '19세 미만 구독불가' 표시가 있고, 제목만 봐서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은 단편소설인 반면, 『신역 돈주앙』은 세 권짜리 분량이다. 여기서 두 가지 판본에 대해서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1995년에 보람이라는 출판사에서 『완역 돈쥬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구성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우연한 로맨스', 제2부는 '프랑스에서는 향수를 사지 마라', 제3부는 '여자의 환상에 마침표를 찍을 때'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다.
『완역 돈쥬앙』 1권 목차. 2부는 2권에도 계속된다. 목차만 보면 2부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본 결과, 2권에 '에디스의 이야기'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되는 나머지 2부의 이야기는 1권에 소개된 2부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런데 제2부는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두 편의 이야기가 같이 묶어 있다. 책의 목차에서 보면 2부의 내용이 중간에 끊기고 2권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상 서로 다른 내용이고 주인공도 다르다. 1권에 수록된 2부는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의 로제와 비슷한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2권에 수록된 남은 2부의 이야기는 '에디스'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책의 이야기가 조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자면,『완역 돈쥬앙』이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장편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이 두 권의 책 속에 네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은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 걸까? 『완역 돈쥬앙』1권 제1부가 아폴리네르가 쓴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이다. 나머지 2부, 3부 이야기는 아폴리네르가 쓴 것이 아니다. 어째서 아폴리네르가 쓰지 않은 이야기가 같이 수록되어 있는 것일까?
이유는 문학수첩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에 수록된 미셸 데코댕의 해설에서 알 수 있다. 미셸 데코댕은 아폴리네르 연구의 권위자로서 아폴리네르의 야설 출간과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아폴리네르는 원래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과 『사랑스런 검둥이 여자』라는 작품을 함께 묶어서 출판하기로 생각했다. 그는 출판사에게 자신의 출판 계획을 약속했으나 출판사 측은 그가 제출하는 원고가 지나치게 간결하다는 이유로 실망스러워 한다. 게다가 아폴리네르가 『사랑스런 검둥이 여자』의 제출 약속을 미루게 되자 출판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출판사는 자기 임의로 다른 야설모음집에 수록된 「햐안 에르민느」라는 작품을 첨가해서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과 같이 출간시켜버린다. 이런 엉뚱한 출판은 한동안 '햐얀 에르민느'를 아폴리네르의 작품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완역 돈쥬앙』의 번역자는 제1권 제1부 '우연한 로맨스'가 아폴리네르가 직접 쓴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이라고 언급하지 않은 채 2부와 3부 이야기 모두 아폴리네르가 쓴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2부와 3부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2부 '프랑스에서는 향수를 사지 마라'가 「햐안 에르민느」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 중반에 주인공을 유혹하는 러시아 여인 '이르마'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에르민느와 이르마. 이름의 발음도 유사하다. 비록 추정에 불과하지만 이르마가 「햐안 에르민느」의 등장인물 에르민느의 동일 인물로 볼 수 있다.
『완역 돈쥬앙』의 번역자는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과 「햐안 에르민느」를 아폴리네르가 쓴 것이라고 착각한 채 이것을 '완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2부에 '에디스'가 주인공인 이야기와 3부는 누가 쓴 것인지 도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분량을 더 채우기 위해서 출판사가 단․〮중편 분량의 야한 소설을 끼워 출간할 것일까?
사실 3부 '여자의 환상에 마침표를 찍을 때'는 딱 읽어봐도 아폴리네르가 쓴 글이라고 할 수 없다. 캔디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내용 중간에 '라디오', '트럭'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과 『황무지』를 쓴 영국의 시인 '엘리엇'이 언급된다. 그렇다면 1907년에 아폴리네르가 썼을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대에 라디오는 없거니와 시인 엘리엇은 태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 글을 쓴 작가는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누가 썼는지 모르겠다. 이것을 증명해 줄 언급의 단서도 없고. 책과 출판사가 사라진 이상, 책의 비밀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가끔 알라딘 중고샵이나 헌책방 사이트에 아폴리네르의 야설이 높은 금액으로 판매된다. 『섹스 도사』라는, 대놓고 노골적인 제목을 내건 책이 있으며 1989년에 을지출판사라는 곳에서 낸 『천사와 춤을』 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다. 교모문고 장터에 들어가면 『애욕의 밤』이라는 책이 무려 50000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되었다. 『섹스 도사』와 『애욕의 밤』은 삼산당이라는 같은 출판사에, 1987년에 같이 나왔다. 아마도 이 두 권의 책은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과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을 옮긴 책일 것으로 추정된다. 확실한 사실은 『천사와 춤을』은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을 옮긴 책이라는 점이다. 시집을 제외한 국내에 발간된 아폴리네르의 소설을 정리해본다.
『섹스 도사』 (삼신당, 1987년, 절판)
『애욕의 밤』 (삼신당, 1987년, 절판)
『천사와 춤을』 (을지출판사, 1989년, 절판) ⇒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과 동일 작품
『완역 돈쥬앙』 (보람, 1995년, 전 2권, 절판) ⇒ 1권 1부가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
『신역 돈주앙』 (픽션뱅크, 1999년, 전 3권, 절판)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 (문학수첩, 1999년, 절판) ⇒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 수록
『이교도 회사』 (문학수첩, 1999년, 절판) ⇒ 단편, 콩트 모음집
혹시 아폴리네르의 야설을 읽고 싶은 독자가 단 한 명이라고 있다면, 절대로 중고샵이나 인터넷 헌책방에 비싼 돈을 내면서 사지 않았으면 한다.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은 알라딘 중고샵에 주문해서 15000만으로 구입했다. 『완역 돈쥬앙』은 내가 즐겨 다니는 대구 헌책방에 싼 가격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절판된 아폴리네르의 야설은 절판본의 희귀성 때문에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야설을 읽고 싶은 충분히 이해하나 책 한 권 때문에 배송료까지 붙는 3만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하면 아깝지 않은가. 차라리 그 돈으로 야동 사이트에 접속해서 야동을 결제하는 것이 더 낫다.
이제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 과 『어린 돈 주앙의 무용담』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사서 안 읽어도 된다. 이 두 작품을 전자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예문출판사에서 '밤의 문학'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성(性)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시리즈 세 번째, 네 번째 도서로 『돈 주앙: 소년 돈 주앙의 회상』『돈 주앙: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단행본이 아닌 전자북으로 나온 점이 특이하다.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출판사 입장에서는 단행본으로 내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전자북으로만 나온 것 같다. 전자북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다. 이 사실을 아는 독자는 얼마나 될까? 최근에 아폴리네르를 알게 되면서 검색하다가 뜻밖에도 전자북으로 다시 나온 사실을 발견했다. 전자북이라 가격도 저렴하니 그동안 아폴리네르에 관심이 있다거나 혹은 소문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야설을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던 독자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그러니까 재차 강조하지만, 문학수첩 번역본이나 『완역 돈쥬앙』을 비싼 돈 내면서 사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