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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역사
아서 마윅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신체적인 아름다움과 출산 능력을 혼동하는(그래서 넓은 골반과 큰 엉덩이를 아름다움과 동등시하는) 진화론적인 이론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몸이라는 성적 재산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한 이해를 방해한다.
아름다움은 독립적인 속성으로서, 성적 쾌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름다움은 소수의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다수의 사람들을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차별적인 유전적 성질이다. 그러나 명백한 미학적 매력이나 그보다 더 강한 성적 만족의 매력을 제외하면, 진화론적인 이론들이 아름다움의 매력을 해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우생학적이고 인종차별적주의적인 주장들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적자'는 아니라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상대와 성관계를 가지려 애쓰는 사람은 유전자 풀을 개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가 그 자체로 훌륭하기 때문에 애를 쓰는 것이다. 정말로 진화가 계속 아름다운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어째서 여전히 어느 집단에든 후자가 그렇게 많이 존재하겠는가?」
Arthur Marwick, 『미모의 역사』, 37p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원인이 유전자 레벨에서 결정된 본능 때문이라면 무엇을 아름답게 느끼는가, 그리고 아름다음에 왜 이끌리는가는 진화론이 밝혀내야할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본능이 진화경로상의 부산물이 아니라면 당연히 fertility와 연계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의 "유전자 풀을 개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가 그 자체로 훌륭하기 때문에 애를 쓰는 것이다" 라는 말은 근인과 궁극인을 혼동하는 대표적인 사례. "정말로 진화가 계속 아름다운 사람들을 선택하고…… 어느 집단에든 후자가 그렇게 많이 존재하겠는가?" 라는 말도 비용-효용 분석을 고려하지 않은 너무나도 단순한 주장. 공작이 길고 화려한 꼬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공짜가 아니다. 누구나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아름다움이 왜 그리 중요하겠는가?
흥미롭게도 유행이나 사회적 요구, 혹은 사상이나 철학, 본능을 죄악시하는 종교 등에서 나름의 필요에 의해 부가한 인위적 아름다움이 잡탕찌개처럼 섞여있는 미의 가마솥에서 오로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요소만 추출한 후 저자가 내린 결론은 진화심리학에서 하는 이야기가 별반 다를 바 없다. 신체적인 아름다움은 긴 시간동안 큰 변화없이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과 "무엇을 아름답게 느껴야 한다는 특정 시대의 주장"을 전혀 구분하지 않아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경향에 대해서 자유로울 뿐더러 현상을 기술한 뿐 그 이유(왜 미의 요소들이 일정한가? 왜 사람들이 미에 끌리는가?)에 대해 무리한 설명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서문만 잘 넘기면 진화론의 주장에 익숙한 사람들도 불쾌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 내용도 재미있고 미인들의 그림과 사진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