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산티아고 - 소녀 같은 엄마와 다 큰 아들의 산티아고 순례기
원대한 글.그림 / 황금시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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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PAPER>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최근에 이 잡지에 실렸던 글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지만, 원대한. 이 사람은 글을 꽤나 잘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언젠가 ‘입대’를 했다며 <PAPER>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냈다.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저자에게 한없는 질투를 느꼈다. 글을 잘 쓴다는 것, 책을 냈다는 것, 엄마와 함께, 그것도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것 모두. 며칠 전 집에 갔다 우연히 마주한 엄마의 눈가 주름이 생생히 떠올랐다. ‘나는 엄마의 주름이 이렇게 생기는 동안 무얼 했나.’ 긴긴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는 질부 조금, 부러움 조금, 자괴감 조금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월간 <PAPER>가 그랬듯 이 사람도 재주꾼이다. 그림도 제법 그리고, 비올라도 연주할 줄 알며 사진도 잘 찍는다. 쓰는 재주는 없어도, 보고 읽는 재주는 조금 있어 별별 것들이 다 부러웠다. 하지만 내가 걱정만 하며 보낸 세월동안 이 사람은 무언가 이루기 위해 노력했으리라는 걸 알기에 감히 질투할 수도 없었다. 대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자’며 나를 달랬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고, 어떤 노력 없이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인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철없지만 나도 이제는 엄마의 주름이 조금씩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 이상하게 ‘부모님 없이 어떻게 살까’라든지,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을 텐데, 정말 어떻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을 한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부모님에 비하면 아직도 여전히 ‘정신없는 풋내기’일 뿐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엄마의 소원이었던 산티아고를 함께 걸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엄마와 함께 걷고, 책을 낸 덕분에 나 같이 나밖에 모르는 사람도 ‘엄마와 함께 제주 올레라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 ‘인생은 짧고 덧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고,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무한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엄마, 아빠다.

 

이제야 엄마의 주름, 아빠의 거친 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다. 이 책의 저자처럼 엄마와 함께 나의 시간을 포개는 것,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언젠가’가 아닌,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시간을 자꾸 미루기에 인생은 짧고,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닐 무언가에 목숨을 걸기에 인생은 덧없다.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항상 잊지 말자 생각한다.

 

 

길이 너를 위해 솟아나기를
바람이 언제나 너의 등 뒤에서 불어오기를
햇살이 따스하게 너의 얼굴을 비추기를
비가 너의 주위를 부드럽게 적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신이 너를 그의 빈손으로 품어주기를

등 뒤에서 바람이 분다. 가을 햇살이 붉어진 숲길 사이로 느리게 스민다. 함께 걷는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어 엄마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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