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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가진 외투 세 벌 중 하나를 누군가에게 벗어주어야 한다면, 나는 세 벌의 외투 모두를 부여 잡고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 이유를 말하라 하면 하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줄 수 없고, 또 하나는 여자친구로부터 받은 것이라 이것을 줌으로써 그녀를 실망시킬 수 없으며, 나머지 하나는 내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이라 이것 역시 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움켜쥐고 행여 누군가 빼앗으려 하지 않을까, 충혈된 눈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버림...
만약 지은이가 나의 형제였다면, 또는 나의 아들이었다면, 아니 그냥 단지 가깝지 않은 명목상의 친구였다 해도, 그의 모든 것을 버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비웃었으리라. 무모하리만치 버려대는 그의 행동을 단지 무책임한 객기로 치부해 버렸으리라.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음은 왜일까. 내가 비웃어야 할 대상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느낄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움과 수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가진 외투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그로 인해 한없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인정할 수 없지만, 아니 감히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인정하기 싫지만, 그는 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얻었다. 집을 버림으로써 부모를 얻었고 교회를 버림으로써 예수와 부처 모두를 얻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버림으로써 사랑을 얻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말이다.

만약 이 책을 불교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증거라 생각하는 불교신자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불법을 닦지 못하는 사람일 터, 또한 이 책의 첫장을 넘길 용기도, 끝까지 읽어나갈 열린 마음도 갖고 있지 못한 크리스찬이라면 그 역시 허상의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얻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지은이의 파란 눈은 앞으로 내게서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내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자유로워질 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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