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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1928
주셉 프란세스크 라폴스 이 폰타날스.프란세스크 폴게라 이 그라시 지음, 이병기 옮김 / 아키트윈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음식의 레시피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음식 맛이 다르다. 각각의 구성과 조합들을 알기 때문이다. GAUDI 1928은 그런 책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가우디는 ‘몇 백년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가’, ‘세계가 낳은 천재 건축가’ 정도의 칭호로 충분했다. 이런 추켜세움에 깊은 맛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가우디 건축의 깊은 맛은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우러나온다.
이 책은 대뜸 부록부터 펴 봐도 좋은 책이다. (물론 이병기씨가 직접 쓴 권두언도 훌륭하지만) 부록의 그득한 도해들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친절하다. 가우디를 - 또는 건축을 잘 모르는 이들도 기본적인 공간과 요소와 상징, 구조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병기씨가 스스로 ‘알바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며 그렸던 도해들이다. 이것들을 한번 훑었다면, 1부 또는 2부를 골라서 보면 된다.
성가족성당을 한번정도 방문한 건축 비전공자라면 2부부터 읽어보면, 1부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프란세스크 폴게라가 쓴 2부는 세상에서 가우디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그 절정은 p.439페이지에서 절정에 이른다. 가우디에 대한 수많은 찬사와 비판과, 선입견을 정리해주는 구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책을 사서 보시라. 따로 밑줄 긋기를 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우디를 지켜봤던 사람이 본 가우디와 그의 건축을 말해주고 있다.
1부는 1852년 6월 25일부터 1926년 6월 10일일까지 살았던 어떤 스페인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다. 건축가 가우디는 찰나의 강한 영감으로 뚝딱뚝딱 기념비적 건축을 만든 것이 아니다. 목차 중 눈에 띄는 키워드가 ‘오마주’, ‘양식의 부족함’, ‘도시적 작업’ 인데 이것들은 가우디에 대한 선입견들이 건져 올린 것이다. 공방같은 곳에서 점토를 덕지덕지 발라 도자기 굽듯 성당들을 만들었을 것 같았던 가우디도 오늘날 건축가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접점이 닿았었다. 도시라는 키워드가 그렇고, 시대적 양식의 활용 등에 대한 고민들이 그렇다. 약350페이지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가우디의 계획과 형태 만들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엿보길 바란다.
이 책은 건실히 건축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든 1부는 어떤 스페인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단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도, 한편의 성장드라마를 보듯 편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가우디가 살았던 시기의 스페인은 쇠락일로였다. 멕시코 독립전쟁이후 국력이 쇠퇴해갔고 정치적 안정은 기대할 수 없었고, 사회역시 그랬다. 가우디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예술가적 기질보단 운동가에 가까웠으리라. 그런 그의 모습들이 타인과 집단을 배려하고, 도시와 나라 - 이것들과 건축의 미묘한 연결고리들을 짚어가는 일대기가 그려진다. 제국주의에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과, 또는 여전히 그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가우디라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들은 충분하다.
그렇기에 가우디의 건축은 그저 거대한 조형물이 아니다. 동시대 제국주의 열강들의 건축들이 스스로를 ‘기념비의 죽음’이라 표현하고 있을 때, 가우디는 살아있는 기념비를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 작업에 함께 했던 이들이 이 책을 썼고, 그 기록들을 한국어로 읽을 기회가 지금 여기 있다.
*2부는 서양건축사의 범주를 확장시켜준다. 이탈리아-독일-프랑스-미국으로 넘어간 서양건축사 ‘책’의 주요한 흐름에서 스페인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보통의 책에는 아르누보나 기계미학의 반대했던 운동들의 일부로 가우디가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한 켜 더 깊이 들어가면, 가우디는 취미론과 시대정신사이에서 고민했던 건축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이는 독일 중심의 18세기 이후 미학사관의 가장 큰 줄기인 ‘역사주의’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시대의 역사주의의 큰 골자는 독특한 취향TASTE이 특정집단간의 상대적인 것들이, 아키텍토닉의 단계로 접어들면 건축가의 자의성이 시대정신에서 발현되는 단계로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때로는 국가나 민족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문화의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우리가 가우디에 대한 이론적인 깊이나, 그의 개인사가 그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몰랐을 때에, 가우디는 그의 저택에서 판매되는 알록달록한 도마뱀 기념품 마냥 한명의 집요한 장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우디는 근대 일상의 빈곤한 구조물에 반발했던 지성이었다. 이 시대정신이 가우디의 기념비적 위상에 녹아있을 줄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 또한 우리에게 낯선 스페인 건축의 스펙트럼은 당대 유럽사의 흐름에서 독자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한국에서 건축을 업으로 삼거나 공부하는 이들에게 한국건축의 정통성내지 전통성 또는 난립 등에 대한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듯하다는 겸연쩍은 말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가우디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졌고, 청년 시절만큼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진보적인 활동에도 호기심이 있었다. p.56
그들은 가우디의 독창성이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 깊은 통찰과 역동적인 상상을 온전히 결합시키기 위해 그가 역사를 샅샅이 훓어 얻어낸 결과임을 알지 못했다. p.155
그는 면밀한 지형 연구를 통해 이곳의 자연에 지역 사회가 요구하는 시설들을 배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p.224
"우리가 지금 이 도시를 개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레이광장을 옛 통치자가 살던 당대의 환경으로 되돌리기 가장 좋은 기회일 것입니다. 산타 아가타 경당에 들러붙은 주택들을 허물고, 타피네리아 길 쪽의 주택들도 그렇게 하신 후에 새로운 대로와 레이 광장을 연결하는 거대한 계단을 만드세요. (중략) 가우디의 제안에 영감을 준 것은 위대한 역사에 관한 그의 애정이었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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