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 - 정채봉 산문집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첫 마음>은 표지에 그려진 풋사과 한 알처럼 청량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드는 산문들을 수록하고 있다. 작가인 정채봉 씨의 시나 동화를 그 분이 작고하시기 전에 종종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마다 '동심'을 잃지 않은 분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이번에 샘터에서 출간한 <첫 마음>은 필사 노트와 함께 배송된다. 일부러 노트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책에 나오는 보석 같은 구절들을 따라서 써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책에는 구석구석 마음에 남는 좋은 구절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두 구절을 골라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시절에는 머큐로크롬 약 하나 있는 집도 드물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은 깨어져 피가 솟고 있는 무릎 상처에 흙을 뿌려서 지혈을 하곤 하던 기억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는 담 밑에 홀로 앉아서 빨간 피 번져 나오는 무릎에 솔솔 흙을 뿌리면 서늘한 기운조차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20-21쪽)


위의 구절은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정채봉 작가는 어릴 적에 먼 곳을 바라 보고 다니는 습관이 있어서 자주 넘어지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로부터 '먼산바라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고. 나의 경우에는 급한 마음에 서둘러 뛰다가 넘어지는 일이 많았다. 정채봉 작가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우리 때는 머큐로크롬, 소위 '빨간 약'을 바르는 게 일상이었기에 정채봉 작가와의 세대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작가의 어린 시절에는 약 대신 흙을 뿌리곤 했단다. 그 장면이 눈에 보일듯이 묘사되어 있어서 내가 살아 보지 않은 시절을 살아 본 듯 느끼게 되었다.


"남의 허드렛일을 자기 일처럼 늦게까지 남아 하던 곰보 영감님을 사랑합니다. (...) 동네 머슴 제사를 1백 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내고 있는 문경의 농바윗골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100쪽)


정채봉 작가는 일상적인 소재를 감동적으로 전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인 것 같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들을 쭉 묘사한 위 대목도 나는 너무 좋았다. 특히, 동네 머슴의 제사를 백년 동안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 비록 나는 기독교 인이고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지위가 가장 낮은 머슴이라는 존재를 그토록 소중히 기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말로 간직해 준 정채봉 작가에게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첫 마음>은 마음의 독소를 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순하고 담백한 문체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가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순한 마음이 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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