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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센티미터 ㅣ 웅진책마을 113
이상권 지음, 째찌(최현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축구부 학생들이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한 학생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우리 학교 축구부에는 여학생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머리가 긴 남학생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어찌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그래도 이 일 덕분에 아이들에게 양성평등 교육을 할 때 나의 실수를 이야기하며 좀더 실제적인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머리를 자르지 못해 긴 머리를 하고 있는 남학생이 등장한다. 머리를 자를 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르게 된 머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점까지 남자답지 못하다며 책망한다. 그럴수록 주인공은 점점 더 어려움 속에 빠지는가 싶더니 결국 예상치 못한 이유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 속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제한되어 왔는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제한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강조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런 표현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상대방에겐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엄마의 마음이 가장 와닿았다. 처음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아들이 답답하기만 하지만 점점 아들에 대한 마음이 열리고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나가는 점이 인상깊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계기 역시 따뜻하고 인상 깊었다.
이 이야기를 많은 아이들이 읽고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