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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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을의 끝자락인 날의 오후 11시 56분.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의 안에서 한 소녀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아사이 마리. 똘똘한 19살의 소녀이다. 주의깊게 책을 읽고 있는데 2년전에 언니인 에리와 더블데이트 상대였던 다카하시가 나타나서 아는 척을 한다. 그는 트롬본을 부는듯하다. 그는 트롬본연습 가기전에 마리와 약간 이야기 후 사라진다.

오후 11시 57분 아름다운 마리의 언니, 아사히 에리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2달째 조용히 자고 있는 그녀의 방에 있는 TV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

오전 0시 25분 책을 읽고 있는 마리에게 카오루라는 건장한 여자가 나타난다. 다카하시의 이야기를 듣고 왔대며 중국어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모텔로 따라간다.

마리는 이일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카하시와 친밀감을 더해가며, 에리는 자신의 방에서 사라졌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되돌아 온다.

 

우리말로 '어둠의 저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After Dark"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소설이다. 작년 9월인가 11월에 일본에서는 출판 됐고 우리나라에는 6월에 나왔다. 책이 뻔히 나온 것은 아는데 원서를 읽기는 무리인데 방희준씨 같은 사람이 원서 읽는 것을 부러워 하며 소개정도의 이야기나 듣고 있다가 번역본이 나와서 출판된지 한달만에 바로 샀다. 데뷔 25주년 기념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가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와 [해변의 카프카]에서 구체화 되었던 스타일, 그중에서도 시점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역자인 임홍빈씨의 지적대로 도스도예쁘스끼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과 비슷한 성격의 이른바 "총합소설"(하루끼자신이 명명한듯하다)을 쓰기위한 교두보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왜 [애프터 다크]일까? 제목의 실마리를 알 수 있는 부분은 다카하시가 트롬본을 불게 된 계기가 된 커티스풀러의 트롬본 연주곡 "파이브 스팟 애프터 다크"(Curtis Fuller - Five Spot After Dark)이다. 그리고 마리도 요즘 여자애 답지않게 그 오래된 곡을 알고 있다. 둘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소소한 계기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트롬본 특유의 푸근한 소리로 악상을 전개하는 재즈곡을 들어서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는 좀 어려운 것같다.

 

구성의 측면에서 봤을때 하루끼의 여타 소설보다 스케일이 많이 작아졌으며 밤 11시56분에서 시작하여 오전 6시 52분으로 끝나는 시간대별로 나눠놓은 구성이 이채롭다.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대신 등장인물간의 대화와 도시가 지니는 밤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이러한 성격은 소설의 참여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시점의 측면에서 보면 [스푸트니크의 연인]까지의 그의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성향이 강했다. 물론 개인의 심리라는 것도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영향을 받는 것이며 하루끼의 경우는 6,70년대 전공투 세대의 자기장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참여하려는 소설을 쓰지는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그런 사건에 자기장에 놓여있는 인물들의 자의식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탈사회적이면서 자의식강한 쿨한 개인이나 미지의 외부적인 힘에 의해 휘둘리는 개인의 이야기, 내지는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을 주는 개그물(단편의 경우-"패밀리어페어"나 "빵가게 습격" 등..)을 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대작 [태엽감는 새]에서 사회참여적인 면모가 약간 보이다가 지하철 독가스테러에 대한 르뽀집인 [언더그라운드]를 기점으로 현실참여에 대한 본격적인 모색을 한다.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서는 그동안의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내용 역시 참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오이디푸스 컴플랙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랄까?라는 정도의 내용을 당대 일본의 모습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도 어려졌다. 물론 영감님도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인 카프카는 15살.)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이 [애프터 다크]이다. 시점의 특징상 1인칭 시점은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한정된 시점이다.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3인칭 시점이 적합하다. 그 전까지 1인칭 시점의 사소설적인 측면의 스타일을 선호했던 하루끼는 지하철 독가스 사건이후로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점을 비롯한 기법에 대한 모색을 해왔다. 그리고 [애프터 다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애프터 다크]는 다소 유치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카메라 워킹의 기법을 빌린(하루끼에게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묘사기법이 좀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다.)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다. 서술자의 도시에 대한 묘사와 등장인물간의 사건 및 대화를 통해 도시의 이면, 즉 밤의 모습을 해설없이 보여주기만 하면서 독자들에게 의미를 찾기를 권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을 볼때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타 작가들은 다루지 않았던 도시의 밤의 특성을 살피고 그것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중국인 접대부를 난폭하게 폭행하는 번듯한 회사원, 알 수 없는 존재에 쫓겨서 이름도 감추고 도망치며 살아가는 고오로기, 미디어에 노출된 관음증의 대상이라는 상징으로 등장하는 에리, 여자프로레슬링 스타였다가 세상살이 요령이 없어 빈털털이가 됐다가 러브호텔 경호원을 하는 카오루, 어떻게 샐아야 할지 자신의 삶을 혼란스러워하는 다카하시와 마리 등의 인물들이 겪는 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 내지는 병리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 해결책은? 번역본에 실린 권택영선생의 감상노트에 실린 의견대로 그 해결책을 원형적인 측면에서 찾는 듯 하다. 원시시대에 외부의 무서움을 함께 꼭껴안는 것으로 이겨냈듯이 점점 원자화 되어가고 비인간화되어가면서 잠재적인 위험이 많아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리와 에리를 통해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오로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 삶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애프터 다크]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좀더 스케일이 큰 애프터 다크를 쓸 것이라 생각한다. 시공간적 배경을 좀더 크게 잡으면서 여러 인물들의 다층적인 이야기가 얽히는([애프터 다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히는 측면은 약하다) 소설을 발표하리라 예상한다. 시점은 당연히 3인칭을 고수할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작품세계의 변모를 봤을때 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끼의 간만의 신작 장편소설 [애프터 다크]는 그의 현실참여적인 성격으로 작품세계가 변화해 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며 그에 따른 기법 상의 변화를 도시의 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실험하는 작품이라 정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간의 연대나 기억을 힘으로 살아가자는 정도의 주제의식은 여타 만화나 애니메이션, 소설에서 많이 봐온 것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는 주제이지만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상징적으로 제시를 하는 서술 방식과 같은 변화를 꾀하면서 여전히 하루끼 소설 본연의 읽는 맛을 살리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대는데(놀랍게도 하루끼는 읽을 수록 재밌는 글은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댄다. 어떻게!?) 그건 다시 읽고 생각해 봐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아쉬운 점은 권택영 선생의 감상노트를 읽어버려서 스스로 의미를 찾기전에 남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 버렸다는 점이다. 역시 글쓰기 전에 그런 감상글이나 분석글은 피해야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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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예술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곽재구 글, 정정엽 그림 / 열림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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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곽재구 시인이 예술의 향취를 찾아서 발걸음을 옮긴 기록들의 모음이다. 주로 문학작품과 관련된 것이고, 화가와 음악가에 대한 내용, 진도 소리에 대한 내용 등으로 채워져 있다.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란 초월적, 탈현실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과 지난함 사이에서도 오는 것이며,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욕구가 가득찰 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시인은 이야기하며 그 발자취를 따라 간다.

 

예술 기행이다 보니 자신이 시를 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듯한 젊을 때의 여행기나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흥미로웠으며 글부분, 부분에서 위 문단에서 제시한 시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특히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과 자신의 기행을 바탕으로 정립된 예술관이라는 것은 그의 관점에 신뢰성을 높여준다.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달까?

 

풀밭에 누워 자잘한 야생화와 풀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하늘의 별에서, 나이든 소리꾼의 얼굴에서, 동료 소설가의 치열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시인의 시선이 부럽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문학적 열정으로 문인들의 발자취나 우리 땅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거리낌 없이 떠나며 느끼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 부럽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을까? 난 그 가능성을 믿는다. 귀가 얇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을 접하면서 나부터도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현실적인 감각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여러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름답지 않을까?

 

혼자 가지 않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시인이 이야기한다.(진정한 여행은 배낭여행이고 솔로일 때 가는 것이 진짜고 그 이후는 관광이라고 이야기한 친우 박지환군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앞으로 우리 고장의,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찾아 생각날 때 목표정하고 혼자 발걸음을 옮겨봐야지라는 다짐을 한다.

 

 

제목 : 곽재구의 예술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 지은이 : 곽재구 / - 출판사 : 열림원 / - 출판년도 : 2003
- 분류 : 산문/에세이/논픽션 → 기행/답사
- 차례
작가의 말
미조 포구에서의 짧은 하룻밤의 기록
 - 이성복의 남해 금산을 찾아서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의 끝 
 - 섬진강 화개 장터에서 김동리의 '역마'를 회상하며
선운사 골짜기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 서정주의 질마재 마을을 찾아서
다시,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과 금강을 찾아서
변혁기 지식인의 두 초상 
 - 공재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을 찾아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의 고향을 찾아서
소리가 밥이고 소리가 사랑인 사람들
 ― 진도 소리를 찾아서 1
그리운 통영 바다
 ― 윤이상의 고향 충무를 찾아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박인환의 시를 위한 몇 개의 회상
운두령에 핀 노란 들꽃
 ―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봉평에서 운두령까지
열애처럼 쏟아지는 끈적한 소설의 비
 ―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장흥을 찾아서
극락이 으디 별거드냐 우리들 마음 속이 극락이제
 ― 진도 소리를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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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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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는 마콘도라는 마을에 정착한다. 그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2세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를 낳고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아우렐리아노가 머리가 커질 무렵 나라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고 아우렐리아노가 자유파의 편을 서며 내전의 선봉을 서면서 역사적인 격랑으로 빠져들어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라고 할 수 있다. 아우렐리아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인물이면서 내전의 소용돌이에 17명의 엄마가 각기 다른 자식들을 남기며 자유파 내전 진영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 하지만 죽기전에나 자신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죽어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그 자리를 이어간다.

 

이 작품은 부엔디아 가문을 둘러싼 100여년 간의 흥망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며 보여준다. 제목과 같이 서술의 중심에 놓이는 여러 인물들은 젊을 때에는 어떻게 지냈든 노년에는 삶의 부질없음을 꺠달으며 고독 속에서 늙어간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덜 된 상태의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어떤 정치적인 혼란을 겪었을지 마콘도의 흥망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하는 자유파와 사회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을 의미하는 공화파는 대립하며 자유파는 전쟁을 선언하여 공화파와 투쟁을 벌인다. 내전은 번번히 자유파의 패배로 끝나지만 나라에서 그 세력은 커져가고, 거듭되는 혼란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화파 인사들은 자유파 인사들을 영입해가며 내전을 마무리해간다. 그 이후에 미국에서 바나나 농장이 들어오고 그들이 마콘도의 노동력을 착취하자 마콘도에서는 쟁이가 일어난다. 하지만 오랜 투쟁 끝에 설립된 정부는 쟁이를 반란으로 간주하고 기관총 난사로 응대한 뒤 그 일은 사실이 아니라는 여론조작을 통해 수습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로 믿는 덜 의식화된 시민들의 모습까지!) 4년간 지속된 장마로 바나나 농장의 사업주들이 철수하자 흉흉한 마을로 변해버리는 마콘도. 그리고 거대한 회오리에 모든 것이 날아가버린다. 이러한 마콘도의 역사가 마콘도 마을이 생겨날 당시에 멜뀌아데스라는 집시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1세의 집에 남겨놓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문헌에 그대로 적혀 있는 내용이라는 점은 암시적이다. 즉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기 때에 겪었을 혼란과 제국주의의 침략, 그 후의 피폐함을 소설 중의 마콘도라는 마을에 한정짓지 않고 남미 여러 나라들로 확대시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소설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남미의 소설을 잘 접해보지 않았고 그 쪽 문화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작품을 읽으며 여러가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남미쪽 사람들은 부모들의 이름을 좀 심하게 이어받는다는 점이라든가 그들의 의식주, 종교적인 의식, 도덕관 등 총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고 할까. 물론 이 작품 하나 읽고 남미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지만 내가 그런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이 대하 역사소설로 그들 자신을 잘 알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밌으면서도 약 100여명의 이름이 비슷한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중 1/3이상은 그들에 대해 상세히 저술되기 때문에 좀 버거우면서 정신없는 측면도 좀 있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면, 소설의 초반에는 현실과 환상이 섞인 초현실적인 면-날아다니는 양탄자, 죽은 자가 다시 나타난다든지 하는 설정-을 보여주다가 아우렐리아노가 서술의 중심에 왔을 때는  사실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고, 후반부에는 다시 조금은 환상적이면서 퇴폐적이랄까, 묵시록적이랄까 그런 분위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자가 남미의 설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과거를 환상적으로 제시하고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침략이 시작되는 근대를 사실주의의 수법으로 제시하여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볼륨이 빽빽한 글씨에 500장이나 되서 읽기에 만만하지는 않지만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재밌게 읽힌다. 서사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복잡한 플롯을 가지지만 그것을 버릴 내용없이 꼼꼼하게 엮어나가고 그것에 더해 자신의 민족에 대한 역사적인 통찰과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 본연의 고독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만드는 작가의 뛰어난 역량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방학 때 엄마 가게일 도와드리는 와중에 내 심심함을 타파해준 작품이다. 여러모로 읽어서 득이 되는 작품이니 독서를 권장하며 책을 선물해준 선영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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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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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샘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으로 이어지는 대하 소설들은 읽고 싶지만 개인적인 게으름으로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자신의 소설에 있어서 전환기에 해당하는 중장편 작품을 쓰셨대서 '그거라면 볼 수 있겠는걸?"이란 생각에 [인간연습]을 장만. 전에 봤던 '선택'이라는 영화에서도 이념으로 인한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의 치열한 인생에 대해 존경스런 마음을 가졌는데 [인간연습] 역시 그와 비슷한 소재를 담고 있다. 단 선택의 경우 비전향 장기수가 나온다면 인간연습에서는 갖은 폭력과 독방감금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에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자기도 모르게 전향을 해버린 윤혁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선택에서는 끊임없는 전향의 유혹과 폭력을 꿋꿋히 버텨내는 인간형을 보여주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인간연습에서는 사상적으로는 전향을 하지 않은 전향자의 고뇌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가고 자신의 삶을 다시 긍정해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혁은 상업대학까지 졸업한 인텔리로 북에서 4.19의 혼란한 틈을 타 다른 간첩들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라는 당의 지시를 받고 온 간첩이었다. 그러다 잡히게 되었고 남에 있던 가족들의 회유와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향을 하지 않았지만 90년대 초반 경 끝내 전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일본어와 영어 번역이 가능했기 때문에 감옥에서 만난 강민규가 이런 저런 번역일을 구해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자신이 전향해버린 것이 자신의 동지들에 대한 배반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공산주의 사회가 소련의 몰락, 북한의 기아, 중국과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당원들의 부정부패와 같이 그야말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납득하지 못해 정신적인 혼란으로 괴로워한다. 하지만 부모가 없는 경희와 기준이 남매와 우연히 만나면서 삶의 활력을 얻게 되고 아이들이 인간의 꽃밭이라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중고등학생들이 접근하기에는 꽤나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내에 이념에 대한 고민과 모색이 워낙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중고생들이 그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며 독해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러한 이념에 관심이 많아서 인지 재밌게 독해가 되더라. 조정래 선생은 이념이나 이상, 조직의 유지 보다는 인간이 중요하며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념에 대한 사유를 치열하게 전개해나가다가 이런식의 휴머니즘으로 슬그머니 마무리하는 듯해서 조금 아쉬운 감도 있지만 선생도 이리저리 얼마나 많이 고민을 했겠는가. 조정래 선생이 그렇대면 그렇게 이해해야지... 그리고 딱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니까. 물론 교사를 해서 그 아이들을 다루는 것은 참 이야기가 달라지긴 해도. 정리하자면 다소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흡입력있는 문체. 적재적소에 과거의 이야기를 삽입하는 등의 치밀한 구성, 다채로운 어휘, 작가의 문제의식이 잘 소화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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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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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라는 소설가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다. 기자생활을 하며 간간히 산문집을 발표해오다 40이 넘은 나이에 난데없이 소설가로 등단하여 [칼의 노래]이란 장편소설로 동인문학상, [화장]이란 단편소설로 이상문학상,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중 하나로 떠올랐다. [강산무진]은 김훈의 첫 소설집으로 [화장]과 [언니의 폐경]과 표제작인 [강산무진]을 비롯한 총 8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김훈의 남성지향성을 보여주듯-[현의 노래]인터뷰에서 여자들이 모성과 인체의 신비를 지닌 주변인으로만 나오는 이유를 물으니 김훈은 도저히 여자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의 폐경]을 제외한 7개의 작품은 남성들이 주인공이거나 화자이며 그 중 [머나먼 속세]를 제외한 6개의 작품들은 중년의 남성들이다. [칼의노래], [현의노래]에서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역사적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실존을 위협하는 삶의 허무를 어떻게 돌파하고자 하는 중년 남성들의 고뇌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강산무진]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대적 배경이 현대로 이동하긴 했지만 IMF나 질병, 일상 앞에서 느끼는 삶의 허무와 인간의 몸에서 느끼는 절실함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에 대해 탐구해간다. 

 

IMF 당시 회사의 중역이나 중소기업 사장으로 있다가 명퇴나 부도로 자리를 물러나야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한국전쟁 당시나 직후에 태어나 힘들게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출세를 향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왔고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따라 함께 자신의 위치를 상승시키며 앞만 보며 달려온 세대이다. 김훈은 이러한 세대의 인물들 중 IMF나 치명적인 질병 등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인물들에게 주목한다. [배웅]-중소기업 사장이었던 택시기사, [화장]-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화장품회사 상무, [항로표지]-중소기업 상무였다가 회사부도 후 등대로 부임오는 직원, [고향의 그림자]-중견 형사였던 택시기사, [강산무진]-간암으로 퇴직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물류회사 중역 등의 인물군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상황의 인물군임을 알 수 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나 [현의 노래]의 우륵과 같은 인물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직무와 삶의 실존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순신은 칼을 겨눠야 할 대상이 있었으며, 우륵은 남겨야 할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근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강산무진]의 인물들은 이순신이나 우륵과 같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그럭저럭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일상의 위협 앞에 어떤 모험이나 결정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냥 주어진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 변화를 묵묵히 견뎌나갈 뿐이다.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고 회사의 여사원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의 망상을 하지만 불륜을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으며([화장]), IMF나 우연에 의해 야기된 자신들의 기존 지위의 몰락에 대해 특별한 일탈을 하거나 하는 일 없이 묵묵히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원인을 반추한다([배웅], [항로표지], [고향의 그림자], [강산무진]).

 

또 그들은 주변 사람들-주로 여성-의 육체를 오감으로 느끼고 상상하며 그 절실함과 안쓰러움에 힘들어한다. 이 부분은 김훈 소설의 특이점으로 볼 수 있는데 몸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며(특히 [화장]에서 그 진수를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주인공들의 감정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절실함이나 안쓰러움은 그들이 느끼는 삶의 허무함과 연결된다.

 

 [뼈]의 경우는 사학자인 서술자가 후배인 오문수라는 다소 일탈적인 인물에 대해 묘사하면서 기원리라는 마을에서 출토된 유적의 의미없음과 여자의 엉덩이 뼈를 보며 느끼는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원리 유적의 의미없음을 의미없음 자체로 규정하는 나와 기원리 유적을 통해 연구논문을 쓰려고 하는 오문수의 갈등을 통해 역사란 어떤 의미를 지니냐는 의문과 학문으로서의 역사적 접근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개인적으로 다소 느낄 수 있다. [머나먼 속세]는 외딴 섬의 절에서 큰스님에 의해 키워진 내가 프로 권투 선수로 챔피언 도전전을 벌이며 자신이 뭍으로 나오는 과정을 반추하는 이야기이다. 젊은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이채로우며, 권투 경기의 묘사가 뛰어나다. 물론 그 묘사의 와중의 김훈 특유의 문체는 남아있지만.

 

[언니의 폐경]은 이혼한 중년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그의 내면을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김훈 소설의 발전차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아직은 나와 나의 언니를 성격 묘사가 묵묵히 주변을 받아들이고 육체에 안쓰러움을 느끼는 기존 김훈의 다른 남성 캐릭터들과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달, 강과 주기를 맞춰 생리가 터지고 현실에 순응하는 언니의 모습은 지나치게 여성을 신화화하는 부분이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김훈 소설의 다변화의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김훈의 첫 소설집 [강산무진]에 수록된 작품들은 근대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와 삶의 절실함과 허무함을 자신의 또래들이 어떻게 해쳐나가고 있느냐?를 보여주고 있다. 특유의 짧고 힘있는 문체는 여전하며 육체에 대한 핍진한 묘사와 그로 인해 느끼는 심리묘사가 돋보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있다. 작품집에 주인공들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공통분모를 살펴보고 그와는 약간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을 따로 간단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했는데 작가의 각개 작품들을 너무 일반화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며 김훈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P.S : 으헉...글쓰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리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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