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부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각자의 일에서 은퇴한 부부가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난다. 둘 사이에는 각자 다른 사람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하나씩 있었는데, 모스크바에는 남편 앙드레의 딸 마샤가 살고 있다. 삼 년 만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앙드레는 사회적 변화 앞에 적잖은 실망감을 느끼지만, 딸과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아내 니콜은 둘만의 시간을 마샤에게 빼앗겨버린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젊음을 시기하고, 이윽고는 부부의 관계를 처음부터 복기해보기에 이른다.
우리 부부는 너무도 촘촘한 습관들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어떤 질문도 허용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 딱딱한 껍질 밑에, 진짜 우리와 살아 있는 우리 사이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이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안다고 해서 내가 그이에게 어떤 존재인지까지 알 수는 없어. (91쪽)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지된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 사이 서로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소설이 멋진 것은 그 대화의 과정들이(각자 오해를 쌓아가는 과정들까지도) 빛나는 문장으로 쓰였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게 뭐?' 그녀는 호텔 쪽으로 돌아가면서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자문했다. 해결책이 없었다. 그들은 계속 함께 살 것이고,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불만을 감출 것이다. 많은 부부가 그렇게 포기하고 타협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고독 속에서. 나는 혼자다, 앙드레 곁에서 나는 혼자다. 그리고 그것을 납득한다. (104-105쪽)
그들의 고민은 단지 부부 사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늙음에 대한 것(그들은 각자 교수와 선생님으로 재직하다 은퇴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약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에 대한 성찰 역시 녹아 있다. 니콜은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다리 힘이 부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앙드레 역시 소련의 활기찬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은 왜 더 이상 그들에게 속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자기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자문한다.
삶이란 것이 하루하루 늙어가는 과정이라면, 이 소설 <모스크바에서의 오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열정 넘치던 젊은 시절에 만난 부부가 한 평생을 함께하면서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은 어쩐지 귀엽기까지 하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쩌면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더 많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그들은 '젊다'. 그들의 오늘은 더 모범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다음 순간에 둘러싸이고, 그 순간들에 의해 정당화되며, 마지막에 완전히 회복되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