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집 - 2016년 제4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하유지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일전에 어떤 카페로 인터뷰를 나간 적이 있다. 카페는 '전혀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있었다. '카페가 있을 것 같은 곳'들은 땅값이 너무 비싸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그녀는 베시시 웃어 보였다.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는 단순히 커피만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소통하게 했고, 이윽고는 마을을 만들어냈다. 일종의 사회운동가라고 해야 할까?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특유의 소박함과 편안함, 그러면서도 왠지 비장미가 느껴졌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녀가 소설 <집 떠나 집>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소설은 그렇게 따뜻했고, 편안했고, 즐거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부담스럽지 않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소설의 주인공 동미의 상황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삼복더위에 에어컨 한 번 마음대로 켜지 못해 서러움만 삼키던 스물아홉의 동미. 이야기는 그녀가 '이건 뭔가 좀 잘못된 인생이다'라는 깨달음에 집을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짐가방을 끌고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갈 곳은 없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작은 카페 '모퉁이'. 충동적인 가출에 일자리까지 얻게 된 동미는 '모퉁이'로 출근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어떤 사건도, 사고도 없다. 작은 에피소드들이 병렬식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 '삶'이 있다. 저녁을 준비하는 오후의 분주한 손길이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정성스레 올린 라떼아트, 사람을 이끄는 신비한 힘을 가진 고양이까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번듯한 회사에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그래서 그들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가난하고 별 볼일 없다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알바생이 백수보다야 백번 낫다만, 알바생보다 나은 인생은 없을지 곰곰 생각해봐라. 인생 한 번뿐이야."
"한 번뿐이니까 난 좀, 즐겁게 살래요."
"에미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면서 퍽 즐거워는 보인다, 안 그래도."
"그러게. 누나 말이야, 인생의 쾌락 운운하고 꽤나 신여성이 되셨어?"
(하유지, 집 떠나 집, 241쪽)

피식, 픽픽. 그렇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멈칫하게 된다. 그 웃음의 꼬리를 한숨이 잡았다. 밀린 설거지와 청소를 해두고 뿌듯한 마음에 돌아섰는데, 거울 속의 내 머리칼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래도 주위를 한번 쓰윽- 돌아보며 웃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했던가. 소설은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우리를 일상의 행복 속으로 이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착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예쁘다. 그래서인지 잘 만들어진 어느 일본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고, 일전에 만났던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그녀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렇게 소설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행복의 무게를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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