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예술가들 - 남다른 아이디어로 성공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윌 곰퍼츠 지음, 강나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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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에서 처음 마주했건, 마르셀 뒤샹의 '샘'은 적지 않은 충격을 안긴다. (전시회장이든 미술사 책이든, 어디든) 저게 왜 여기에 있어? 저건 그냥 변기잖아. 변기도 예술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술가겠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변기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냐고. 심지어 특정한 예술가의 작품이라고 하는 건 좀 심하잖아. 그냥 갖다 둔 것뿐인데. 이후로도 투덜거림은 한동안 이어진다. 이는 뒤샹의 '샘'이 (어떤 의미로든) 충격을 안겼음을 반증한다. 충격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뒤샹의 '샘'은 유명해졌다. 이로써 뒤샹은 미술사에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개념을 써넣었다. (동시에 현대 미술을 아주 복잡하고, 난해하고,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레디메이드가 미술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꽤나 철학적인 질문들이 쏟아지게 마련이니까)



'샘'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17년이었다. 당시 태동하기 시작한 추상미술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람들은 '샘'을 전시하기는 했으나 커튼 뒤에 가려두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벌써 100년도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변기 자체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하지만 뒤샹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당시 예술가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물감을 썼다. 물감이 공산품이라면, 변기와 다를 바 없었다. 또 예술이 어떤 대상을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라면, 뒤샹 역시 변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였으므로 그 과정 역시 예술의 일부라 할만하다. 뒤샹의 '샘'에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사고의 전복이 녹아 있었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예술가의 '창조성'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뒤샹이 무엇에 영감을 받아 '샘'을 선보였는지는 몰라도-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을 테고, 그것은 그의 시선을 '달리 보게' 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창조적인 사고 과정이 일어났을 테고, 뇌는 문제 해결 모드가 되었겠지. 이는 곧 생각했다는 것이며, 생각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영감은 그때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아이디어가 생성되는 과정이다. 낯선 결합에서,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섞는 방식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세상에 선보일 때는 긴장하게 된다. 자신감 있어 보일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확신에 찬 사람은 없다.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긴장감을 기꺼이 감수해내야 한다. 불확실한 것은 보다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애매모호한 것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선택한 것 중에는 옳은 것도 있겠지만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설령 뒤로 돌아가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야 할지라도- 일단은 저질러 볼 것! 그러니까 창조성이란, 일종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셰릴: 갓 구운 케이크를 드시겠어요?


나: 네, 좋아요.


셰릴: (싱크대 위 선반에 세로로 수납해 둔 접시를 가리키며) 하나 고르세요.


나: 네?


셰릴: 접시를 하나 고르시라고요. 저는 접시를 수집하고 있는데, 같은 종류의 접시는 하나만 사요. 그리고 손님이 오면 어떤 접시를 사용할지 직접 결정하도록 하죠.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요. 의견이 있을 때 인생은 훨씬 재미있는 법이죠. (본문 중에서, 228쪽)



책을 읽으며 만난 작은 에피소드에 무릎을 탁, 하고 쳤다. 맞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고, 모두에게는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우리의 삶은 보다 풍성해진다. ... 일전에 모든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창조성'이 왜 어른들에게는 발견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다가-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줄 부모가 있기 때문이라는 데서도 비슷한 '아하!'의 순간을 맛봤더랬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는 태도로 누군가의 선택을 들어줄 때 우리 사회는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고 곧 그것은 우리 모두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약간의 용기를 품고, 시도해볼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채도를 한 뼘쯤 높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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