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한다는 건 뭘까? 토익이나 토플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 CNN뉴스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것? 원하는 정보를 영어로 얻어내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 ... 사실 진짜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같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했음에도 영어가 여전히 편하지 않은 나로서는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비즈니스 영어, 학술 영어, 일상 영어가 내게는 모두 따로따로인 셈.
영어로 구글링을 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지만, 아이와의 생활에서 영어를 자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막막함이 밀려들어왔더랬다. 아이와의 일상에서 영어를 쓴다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사실 '독백'에 가깝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영어를 오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이것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 영어로 오래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표현의 수가 많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풍부한 에피소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영어로 얼마나 길게 말할 수 있는가는 곧 스피킹 실력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 책 <English for Everyday Activities>는 'A picture process dictionary'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순서를 따라 하나하나 영어로 말해보는 것을 위한 책이다. 예컨대 차를 한 잔 만든다면- 물을 끓이고, 티팟에 물을 붓고, 찻잎을 얼마간 넣은 다음, 그것이 우러나기를 기다렸다가 찻잎을 걸러내고 설탕이나 우유를 곁들여 마신다는 것을 하나하나 영어로 말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평생 입밖으로 한번도 내뱉지 않아도 될 문장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들을 돌이켜보고, 영어로 말해보는 것은- 실제로 그 행동을 일상 가운데서 만나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상기되며 영어로 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게 된다.
또 하나- '이불을 정리한다'는 한 문장으로 끝날 일도 세심하게 단계를 나누어 다시 말해봄으로써(책에서는 11단계에 걸쳐 이불 정리하는 법을 설명한다) fluff up, pull, slip, smooth out, spread, tuck의 동작들을 구분하게 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워낙 오래된 책이기도 하고, 유명하기도 해서-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책이지만, 최근 activity book이 출간되면서 다시 한번 핫해진 EEA!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구판이라 오디오CD가 함께 있는데, 개정되고 나서는 앱을 소개해주는 것 같다(sound cloud/study booster). 강의도 있고, 최근 이 책으로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도 많고, 액티비티북으로 보고, 듣고, 말하면서 복습까지 할 수 있으니 나만 잘하면 진짜 좋은 영어 교재!
본문 내용을 외워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부담감을 지워줄 것이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꺼내보고- 한번이라도 더 말해보면서 즐겁게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