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시작하는 아트 테라피 - 그림으로 마음의 안부를 묻다
주리애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 미술은 왜 필요할까.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아름답게 쓰려고 할까. 오일 파스텔도, 캘리그래피도, 컬러링도 트렌드가 된지 오래지만- 왜 그것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더랬다. 이 책의 저자 주리애는 그림을 감상하고 그리는 행위가 '자기 자신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데서 의미 있다고 했다. 느끼고 집중하다 보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내면이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 동의했지만, 행동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막상 스케치북을 펼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왠지 모를 미련이 남아 수채화 물감이며 아크릴 물감, 오일 파스텔, 색연필에 한가득 욕심을 냈다. 그렇게 쓰지 않은 미술 재료가 쌓여가던 참이었다.


서랍 속 오래된 물감들을 생각하다가, 아이와의 미술놀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2차원에 갇혀 있던 나의 시도들과는 달리 아이에게는 훨씬 더 다양한 재료들을 제안하고 있었다. 아이는 커다란 옹기토를 쓰고 싶은 만큼 덜어내 커다란 조각상(?)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클레이로 색을 자유롭게 섞어보기도, 재활용품 상자에서 꺼내온 몇몇 물건들을 활용해 자기만의 친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 사이의 온도차를 느끼니 새삼 나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에게는 좀 더 다양한 재료를 허락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나에게 책상 위에서만 할 수 있는 활동만을 허락했을까. 나는 왜 나에게 좀 더 커다란 캔버스를 준비해 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것(그러니까 아이가 쓰는 2절지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이런저런 재료들을 자유롭게 탐색해 보는 것)에 (사실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내가 나에게 한 번도 쥐여주지 못한 그것들을 내 아이에게 쥐여줌으로써 대리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어쩌면 커다란 캔버스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나와 달리 아이의 거침없는 움직임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혼자서 시작하는 아트 테라피>는 낯설지 않으면서도 낯설었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재료들은 대개 이미 우리 집에도 있는 것들이었고, 아이와 함께 활동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모루나 나뭇조각, 플레이콘 같은 꾸밈 재료를 매일 같이 만지면서도 그것을 나만을 위해서 써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일이 없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것들을 나만을 위해 써보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만들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덧붙이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책이 제시하고 있는 우울과 불안, 관계와 성숙은 현대인이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할 테마다. 난 괜찮은데? 우울하지 않은데? 싶지만, 가만 돌아보면 괜찮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나는, 나만 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오직 나만이 살뜰하게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내 마음의 모양새가 어떤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괜찮겠지, 나는 괜찮잖아-하고 이성이 먼저 말해버려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목소리를 이제라도 들어보자. 그 가운데 '일단 시작하고 보는' 미술활동은 따뜻한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색은, 우리의 움직임은, 그림은- 의외로 힘이 아주 세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