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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평점 :
책을 선물받고도 한참을 멀리했던 것은, 나의 삶이 건강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자주 아팠고, 적어도 2년에 한 번쯤은 입원했더랬다. 병명도 다양했다. 한 번쯤은 그냥 지나쳐도 좋을 전염병에 꼭 걸렸고, 천식이 있어 오래 달리거나 높은 산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눈은 고사하고 얼음도 얼지 않는 남쪽 나라에서도 '콜드 알러지'를 진단받고 겨울 내내 몸을 벅벅 긁었어야 했다(그때 우리 엄마는 얼마나 황당해했던지). 고1 때는 갑자기 장이 멈춰서 일주일 동안 금식을 명령받은 적도 있었고, 하필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찍던 주간에 입원했던 탓에 전학생처럼 단체사진마다 쏙쏙 빠져있다. 그뿐인가, 하이라이트는 대학 때 신나게 술을 마시고 위궤양에 걸려 수업 도중에 쓰러졌던 거겠지.
어쨌거나, 그럼에도 건강을 돌보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일단 움직이는 게 싫었다. (한결같이 그랬다) 대신 누군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걸 '보는 것'은 좋아했다. (아, 야구장 가고 싶다. 우리 유격수의 라인드라이브 호수비 보고 싶다)(우리 유격수가 그런 게 가능하다면;ㅁ;...) 위궤양을 앓으며 생명에 위협을 심각하게 느꼈던 시절에는 아침마다 양배추를 갈아 마시기도 했었으나 그마저도 증상이 조금 호전되자마자 그만두었다. 요리를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 먹는 것들도 건강과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반찬을 매주 사 먹는 요즘은 좀 건강한 음식들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커피는 엄청 마셨다. 의식적으로 커피를 꾹꾹 참아낸 날도 예닐곱 잔은 꼬박꼬박 마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활은 규칙적인가. 아, 기상시간만은 규칙적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생활이 규칙적이라는 것에 기상시간 외에도 일정한 시간에 밥을 먹는다든지, 운동을 하고 일을 한다든지 하는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것도 아니겠다.
그러니까- 이 책에 손이 쉬이 가지 않았던 것은 뻔한 말로 '혼날까 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은 순한 맛이었다. 읽고 쓰기 위해서 요가와 필라테스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매일 아침 어떻게든 내 입에 음식을 넣어주던 엄마 이야기나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애써보는 이야기도 있었다. 게다가 이야기는 건강과는 점점 멀어져 건축이나 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갔다. 그제야 책을 앞뒤로 살펴보니 '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라는 띠지의 메인 홍보 문구가 읽혔다. 아, 모두 시인이었구나! 시인에게 '건강'이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늘 포함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진정으로 내가 돌보아야 하는 것은 어떤 건강인가. 전염병이 창궐한 이 시대에. 몸일까, 정신일까?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정의학과 의사가 말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는 정말로 만병의 근원이란 말인가? (본문 중에서, 72쪽)
'건강'이라는 단어 앞에 나도 모르게 '육체적'이라는 말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니, 나의 정신 건강은 안녕한가 안부를 묻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이러이러한 것들을 먹고, 이러이러하게 살고 있으니 육체적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좋은지, 나쁜지,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어쩌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몸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이 더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조금 슬퍼졌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안 하던 무엇인가를 새로이 하게 되지는 않을 테지만- 그냥, 왠지 텁텁한 맛이 자꾸 났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건, 나도 알겠다. 하지만 아직은 건강을 위한 움직임보다- 좋아하는 자세로, 옆에는 커피 한 잔을 둔 채 책이나 실컷 읽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 젊어서 모른다'라고 할 테지만. (정말 때가 되면 스스로 운동을 찾게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