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법 - 스스로 묻고 해결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땅콩문고
윌리엄 고드윈 지음, 박민정 옮김 / 유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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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품는 일은 중요하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궁금한 것이 있다는 것.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알고 싶은 마음을 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질문을 하는가, 또 '누구에게' 질문을 하는가 역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어떤 질문을 하는가는 곧 질문하는 자의 생각 한가운데를 읽는 일일 테고, 누구에게 질문하는가는 질문하는 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쁜 질문'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좋은 질문'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해서,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질문이 나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책은 '질문하는 법'보다는, '질문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방법'에 대해 쓰고 있었다. 상상했던 방향과는 결이 달랐지만, 200년 전에 사회와 교육에 대해 고민했던 사상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가는 200년 후의 오늘을 사는 내게도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이 책 <질문하는 법>의 저자 고드윈은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당시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흥미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어른이 생각하기에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아놓은) 커리큘럼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산업화와 기계화를 생생하게 경험하며 교육을 통해 좀 더 나은 사회계층으로 올라가려고 노력하고 경쟁하던 그때에- 진정한 배움을 이야기했던 고드윈은 누군가의 마음을 뜨겁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방식으로 내 마음을 달군다.

아이를 키우고, 유아교육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지점 역시 바로 이런 부분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해결하는 아이로 키워내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하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정해진 방법이 없다는 것. 아이마다 기질과 환경이 다르고, 부모나 교사 역시 기질과 환경이 다르므로- 그들 사이에 시너지가 나는 방법 역시 제각각이다. 그러니 특정 부모-아이의 경험을 서술한 육아서나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두루뭉술한 이론들은 모두 뜬구름같게만 느껴졌던 것. 그런 고민을 하는 내게, 저자는 아이를 좀 더 믿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책을 둔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수천 가지의 새롭고 훌륭한 조합을 만들어 낸다. 무수히 많은 장면을 상상하고, 용기를 시험하고, 독창성을 과제로 삼으며 서서히 인생의 다채로운 사건과 마주할 준비를 한다. 그는 자신이 읽은 수많은 책에 조언을 구하고, 인류를 위한 미래의 가르침과 즐거움을 위해 다음 독서를 계획한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표정을 읽고, 그 사람의 과거를 추측하고, 그들의 지혜나 어리석음, 미덕이나 악덕, 만족이나 불행을 머릿속에 피상적으로 그린다. 마주치는 모든 것이 그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본문 중에서, 40쪽) 책은 무수한 방법으로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자극한다.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재촉한다. 그렇다면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가장 좋은 촉매제 아닐까.

아이가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은 비단 학교의 커리큘럼만이 아닐 테다. '아동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잘 정리되고 적극적이고 배울 준비가 된 마음가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근면성과 관찰력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목적을 충족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나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기에 즐겁다. 살면서 쓸 일이 한 번도 없을지 모를 낯선 언어를 배우는 일도 재미있고, 기말고사의 부담감을 안게 되는 것마저 즐겁다. 욕망하는 공부야말로 진정한 활동임을 경험하면서, 아이에게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해'하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공부할지 결정하면 안되는 걸까? 아이가 어떤 것의 가치를 알기 전에 그것을 꼭 배워야 할까? ... 고드윈의 이야기에 내내 동의했으면서도, 쉽게 '아니지!'하고 고개를 젓기는 어렵다. 정말이지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오랫동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

책이 좋은 매체라고 해서, 책에 쓰인 모든 내용이 옳은 것은 아니다. 독자로서 우리는 책의 내용들을 충분히 경계하고 의심해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 과정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독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래의 문장들에 완전히 공감하는 바이다.

독서가 불공평한 오명을 얻게 된 이유는 진정한 독서 방식을 충분히 고심해 본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는 태양의 표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흑점이 연료의 일종으로 타면서 찌꺼기를 배출하고, 머지않아 태양 자체를 이루는 물질로 바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독서에 있어서도 우리가 읽은 가설이 항상 머릿속에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채 이전과 똑같은 내용으로 덩어리째 남게 되면, 의심의 여지없이 사고를 기형적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태도로 책을 읽는다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는 것에 자신의 성찰을 가미한다면, 작가의 생각과 주장을 분석한다면, 책의 각 부분을 비교해 오류를 찾아내고, 그 구성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충분히 훌륭한 부분은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에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설명한다면 말이다. (본문 중에서,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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