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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어 완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ㅣ 새움 세계문학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0년 8월
평점 :
1997년, 열두 살 되던 해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읽을만한 고전을 탐색해서 한참 읽을 때였는데, 이 책을 골랐던 것은- 그저 단편이었기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모르긴 몰라도 마치 이솝우화를 읽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이야기에는 선명한 교훈이 있었고,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때의 내가 어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IMF로 국가 경제 위기 상황이었던 그 때 엄마는 집에 있던 금붙이를 '금 모으기 운동'에 가져다주었고, 우리는 몇 번이고 '아나바다 운동'에 대한 표어나 포스터를 그려내야 했다. 사실 몸으로 느껴지는 경제 위축 상황이랄 것은 없었지만- 세상은 내게 끝없이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던 때였기에- 몇 돈 되지도 않는 나의 돌 반지를 모으면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던 때였기에, 톨스토이의 이 착한 이야기들도 그저 하나의 신화처럼, 혹은 성경처럼 읽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야- 이 책을 다시 읽게 됐다. 하필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는 것이, 읽는 동안에도 왠지 마음 쓰였다. 하필 이 책을 다시 읽는 지금이 그때의 IMF와 계속해서 연관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저 우연일까. 아니라면, 이 이야기가 오늘의 내게 전하고자 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직 이 순간에만 우리가 스스로를 어찌할 수 있기 때문이라오.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이 만난 그 사람이오.
왜냐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상대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지.
오직 그것을 위해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라오.(본문 중에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열세 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천사 미하일이 하나님께 받은 질문과 같기도 한 그것은) 사람들 속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무나도 근본적이어서, 대답하기 쉽지 않은 이 질문들에 톨스토이는 천사의 입을 빌려 대답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각 사람은 자신에 대한 돌봄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살아 있다는 것이다. ... (중략) 모든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은 그들이 제 자신을 위해 어찌할까 궁리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44쪽)" 생각해보니 늘 그랬다. 어머니에게는 아이들의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게 허락되지 않았고, 부자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미래는 불투명한 것이었다. 부자에게 필요한 것이 산 자를 위한 부츠인지, 저녁 무렵 죽은 자를 위한 실내화인지 명료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제아무리 똑똑하거나 부자인 사람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밖에 없음을- 오직 이 순간에만 우리가 스스로를 어찌할 수 있을 뿐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세상은 맑아진다.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라, 선명하게 보이는 지금을 함께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빵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오늘 먹을 빵은 이미 충분하지만, 내일을 위해서 이 빵을 남겨두어야 할지 고민한다. 빵을 나누어주고 나면, 내일 굶게 될까 봐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치의 빵을 저장해두면, 이번에는 모레 굶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충분한 빵을 가졌더라도 빵을 나누어줄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빵이라는 것이, 영원불변한 무엇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다 오늘과 같은 위기 상황을 만나면, 그제야 주위를 돌아본다. 아무리 개인주의, 성과주의 사회라지만-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 묶여 있음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나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노동, 죽음, 병'같은 텍스트가 유독 의미 있게 읽혔던 것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앞만 보고 달려나가느라, 혹은 더 높은 곳이 더 좋은 곳일 거라고 막연하게 믿어왔던 날들에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매시간 죽음이 도사리는 환경에서라야- 우리는 각 개인에게 유일하게 합리적인 일은 합치와 사랑 가운데 각자에게 주어진 해와 달과 시와 분을 즐겁게 보내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야 다시, 처음의 질문이 남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그 질문에 우리만의 대답을 찾아가는 동안, 이 어지러운 시국도 끝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