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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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지금은 오전 6시 15분, 디팍이 5번가 12번지에 들어서던 시각이다. 그는 익숙한 자태로 계단을 이용해 지하실에 있는 창고로 향할 것이다. 입고 온 색 바랜 스웨터를 걸어두고 흰 셔츠와 플란넬 바지로 갈아입은 뒤, 가슴 부분에 금실로 건물 주소를 수놓은 프록코트를 걸친다. 매끈하게 머리를 가다듬어 뒤로 넘긴 다음 모자를 쓸 때는 무사한 오늘 하루에 대한 안도감, 기대감 같은 것들이 조용히 섞였으리라.

이 책의 주인공(중 한 명인) 디팍은 맨해튼의 엘리베이터 승무원이다. 몇 대 남아 있지 않은 수동식 엘리베이터는 주민들을 위해 오늘도 성실히 오르내린다. 요즘 같은 때에 수동식 엘리베이터라니! 유물 같은 그것은 어서 치워버리고, 효율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현대식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5번가 12번지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가면서 나누는 인사와 경청해 주는 배려는 금전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정한 말로 아침을 열어주고, 생일을 기억해 주고, 혼자 밤을 보낼 때는 로비에 자기가 있다며 안심시켜주는 든든함, 그 가치는 어떤 것으로도 평가될 수 없다. 디팍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고마움은 디팍의 일을 조금 더 빛나게 한다. 맞다. 그러니까 그 엘리베이터는- 서로를 조금씩 더 빛나게 해주는 마법 같은 곳이었다.

소설은 엘리베이터를 현대식 엘리베이터로 바꾸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한참을 옥신각신하지만, 사실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 엘리베이터 내부의 목재와 구리 핸들에 왁스를 칠하고 광을 내는 디팍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건물을 지키던 리베라, 하반신 장애를 가진 9층 아가씨 클로이와 그녀의 아버지인 경제학 교수 브론슈타인. 매일같이 오페라를 보고 늘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고상한 알콜중독자와 소문난 프랑스인 잉꼬부부, 뭄바이에서 날아온 디팍의 조카 산지와 디팍의 아내이자 산지의 고모인 랄리까지. 소설은 놀랍게도 이들 모두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다.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코미디"라는 프랑스 어느 잡지의 한 줄 평처럼, 소설은 세상의 모든 편견과 문화, 계급과 인종 차이를 초월하는 어떤 '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오직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그 힘 안에는 오랜 세월 쌓여온 서로에 대한 신뢰, 운명적인 만남(당연히 로맨스도 있다), 다정한 유머 같은 것들이 녹아있다. 그것들은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되어 5번가 12번지를 들썩들썩하게 하지는 못했지만(엘리베이터 교체 이슈가 없었다면, 그들에게는 무슨 이야기가 남았을까?), 건물을 감싸주는 따뜻한 어떤 공기로서 편안함과 포근함 같은 것들을 주었다. 바로 그것, '여기라면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그 마법 같은 공기에 우리는 긴장을 풀어버리고 만다.

나의 알고리즘은 기존의 다른 것들과는 작동하는 방식이 좀 다릅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보가 아니라 각자의 사고방식에 힘을 실어주는 정보를 전달하거든요. 정확히는 처음에만 그렇습니다. 그러다 차츰 다양한 관점, 코멘트, 여러 감정들을 제시하면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볼 수 있는 창을 열어주죠. 나의 소셜 플랫폼은 가상 관계보다 진짜 인간관계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자주 가는 장소의 사진이나 좋아하는 작품 같은 게시물을 올릴 때 이용자는 자신의 개인 정보 파라미터를 선택할 수 있고 프라이버시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는 대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된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는 사람들에게 서로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시야를 넓혀 무지에서 자라난 증오의 불길을 끄는 방법을 깨우쳐주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본문 중에서, 247쪽)

 

어쩌면 산지가 사업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했던 세상도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갑자기 엘리베이터 승무원 역할(?)을 하게 됐지만, 사실 디팍의 조카 산지는 대단한 자산을 상속받은 젊은 사업가다). 서로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아는 곳. 사람들 간에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이고, 나의 사적 영역은 사적인 채로 보존되는 곳. 내가 '나'이면서 '우리'이기도 함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곳 말이다.

서로의 삶을 끌어안은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을 용기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그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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