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마, 나 영화감독이 될 거야."

혜나처럼 나도, 엄마 아빠를 불러 모아놓고 선언한 일이 있었다. (혜나의 엄마가 그랬듯) 엄마 아빠는 네가 무슨 영화냐며 반박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부모님 세대가 만나왔던 한국 영화는 그저 시간을 죽이기에나 적합한 싸구려였고, 우리 세대는 박찬욱-봉준호-김지운을 맞아 영화 안에서 빛을 찾던 때였다. 천만 영화가 기적 같았던 시절, 한국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큼직큼직한 상을 받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시절에 나는 반은 영화산업의 장밋빛 전망을 운운해가며, 반은 고집으로 엄마 아빠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혜나는 진짜 영화감독이 되었다. 영화과를 졸업하고도, 현장에서 꽤 오래 몸을 굴리고도 영화감독이 못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혜나가 졸업한 한교영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일테다. 사실, 거기 들어가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내려놓는 삶을 사는 데 반해- 혜나는 여전히 영화를 하고 있었다. 한때는 나도 매일 밤을 꼬박 새가며 영화를 봤었는데- 큐브릭의 영화와 원작 소설을 비교해보며,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한 숏, 한 숏 쪼개보며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꿈꾸곤 했었는데. 자각하지 못한 사이(어쩌면 외면하려고 했던 사이), 나는 영화와 저만치도 멀어져 있었다. 그랬기에, 혜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고태경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고, 부러웠고, 아련하고 또 얼마간은 씁쓸했다.

"우선 영화 잘 봤고요"

라는 말은, 영화제 GV에서 '안녕하세요'와 비슷한 말로 쓰인다. 영화가 너무 좋았어도, 탐탁지 않았어도 관객들은 그 말로 감독과 배우, 제작자에게 말을 건다. 사실 GV는 아주 길어야 20분 남짓. 프로그래머가 직접 던지는 질문이나 감상도 있기 때문에, 아무리 관객들의 열기가 뜨겁다 한들 네댓 명의 질문 정도만 받을 수 있다. 그 사이에서 곧잘 만나게 되는 '빌런'은 때로 새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푹 빠져있던 어떤 장면에서 황급히 빠져나오게 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영화는 영화다'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또, 좋은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영화만큼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때로 나는 스스로 빌런이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일 경우에 더 그랬다. 적어도, 내가 마이크를 들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치니까. 팬심 반, 영화인으로서 언젠가 같이 만나요-하는 무언의 약속 반. 그런 마음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조혜나와 고태경 사이 어디쯤엔가 나를 끼워 넣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잘되지 않았다. 그저 닉네임뿐일지라도, 이제는 '영화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를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지기도 했다. 동시에, 영화를 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마치 예뻤던 유년 시절의 한 장면처럼 피어올랐다. (정말 좋아했었는데, 현장의 뜨거움마저도 사랑했었는데- 어째서 한 달에 한 번, 극장에 가는 것조차 어려워져버렸을까)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138쪽)

 

혜나와 고태경의 오고 가는 말들이 찬란하다고 여겨질수록, 나는 내가 영화와 멀어졌다 이유를 찾아내려고 했다. 혜나와 승호가 고민하는 지점과 비슷한 위치 어디쯤에서 나는 돌아보지 않고 뒷걸음질 쳤었다. 꼭 감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그랬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 없다지만, 얼마간의 재능은 어떤일에고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영화를 향한 내 열정은 믿었지만, 내 재능은 믿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좋아하는 어떤 것으로 남겨두기를 선택했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영화를 찍을 때의 나와 비슷했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모니터 앞에 앉아 꿈쩍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들을 움직이게 해야 했다. 느낌과 생각을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수록 촬영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체가 없는 어떤 것을 타인에게 설명하고, 그리하야 구체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오케이!'를 외치고 나면, 다시는 그 장면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확신이 필요했지만, 아까의 NG와 금방의 OK에는 크게 다를 점도 (사실) 없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하고 필름을 길게 늘인 다음, 편집실에서 고민해보기로 하면 그 장면은 어떻게 이어 붙여도 마음 같지 않았다.

나는 고태경도 아니고, 혜나도 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소설은 나의 20대를 오롯이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결정을 유보하기 어려워 NG를 OK라고 속이고 살아온 인생. KEEP 해둔 어떤 장면들이 언젠가는 쓰이지 않을까- 무모한 기대를 했던 순간들. ... 어쨌거나 또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서울 영화제 관객상이라니, 마음을 다해 손뼉을 치면서도- 참으로 부럽다. (혜나만은 계속 영화를 했으면!)

+ 다큐멘터리 <GV 빌런 고태경>이 단팥죽을 먹고 싶어지는 영화였다면, 소설 <GV 빌런 고태경>은 영화제에 가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 씨네필 아이디를 목에 걸고, 하루에 네 편씩 영화를 보던 어느 날의 내가 그립다. 아, 또 그렇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일단 체력이;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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