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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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 단상에 목사님이 오르셨더랬다. 경제(대기업)와 정치가 유착되어 있는 것이야 모르는 이 없지만, 정치적 결단을 바라는 어느 집회에서 목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종북을 이야기하는 걸 보니 조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의 논리는 그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당최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설 <반인간선언>은 기업과 정치, 종교가 어떻게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지를 추리물의 형식을 차용해 보여준다. 이야기는 서희가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면서 시작된다. 그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던 날- 서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벌써 이혼한 지 1년 된, 전 남편의 손이 광화문 광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이후 서희에게 남편 정상훈의 발과 귀, 입, 눈, 머리 심장이 차례대로 보내지고, 보인다. 깔끔하게 도려내어져 소독된 전 남편의 신체에서 서희는 무엇을 발견해낼까. 대체 누가, 상훈의 몸을 잘라내 광장에 전시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왜.

인류는 이윤이란 단어에 매력과 천박함을 동시에 느끼지. 하지만 이윤은 그 자체로는 '무'야. 소멸의 없음이 아닌 무의미로서의 없음인데 인류의 공생, 지속 가능한 번영을 지향하면 무의미는 의미가 되고, 그 반대 경우라면 무의미의 무의미가 되겠지. 기업이 사투를 벌이는 방향은 무의미의 의미화야.

무의미는 의미 없음이고, 의미가 없다는 건 의미를 모른다는 거야. 의미는 흡사 살아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처럼 존재하지. 그런데 존재하는 것을 없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믿는 존재들이 섬기는 신은 재앙이네. 여기서부터 종교의 역할이 필요하네. (본문 중에서, 83쪽)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모호한 인터뷰가 조각조각 실렸다. 누구의 말인지 모르는 것은 둘째치고, 그 내용을 읽어도 의중이 쉬이 파악되지 않았다. 종교인이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슥- 읽었을 때는 끄덕여지다가도 곱씹을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상훈이 남긴 메세지의 비밀번호를 풀어, 서희가 그 원문을 확인한다. CS 화학 사보에 실린 정영문 사회통합위원장의 인터뷰였다. 그는 상훈의 양아버지이기도 했다. 두 번 버려진 아이들을 그러모아 제 사람으로 만들었던 정영문은 CS 화학, 또 정치인들과 함께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아들이면서도, 그의 행각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던 상훈과 승호는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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