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담아줘 새소설 2
박사랑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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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디, 제나, 얭의 덕질라이프. 이 소설 <우주를 담아줘>를 가장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그렇다. 스무 살, 혼자 콘서트에 가는 것이 뭣해서 온라인에서 구한 친구들이었다. 서먹하던 것은 아주 잠깐, 그들은 같은 그룹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금세 친해졌고- 서로의 덕질을 응원하고 위로하며 십 년을 함께 보냈다.

나이가 벌써 서른인데,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고 되물을지 모른다. 삼십 대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제대로 사회생활을 못할 것 같은 선입견도 있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고(그녀들의 직업은 선생님, 번역가, 사무직 회사원이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이라면 아마 그들이 아이돌 빠순이 생활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쨌건 확실한 것은, 삼십 대 빠순이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

우리는 부모님 주머니를 털어서 티켓을 사야 하는 십 대도 아니고 알바비를 박박 긁어 티켓을 사야 하는 이십 대도 아니었다. 또한 오빠가 세상의 전부인 십 대도 아니고 오빠가 하는 모든 공연에 출석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십 대도 아니었다. 우리는 티켓팅에 실패하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티켓을 살 수 있는 자금력을 갖췄고 국내 공연에 실패하면 해외 공연에 갈 수 있는 행동력까지 갖춘 삼십 대 빠순이니까. 누가 인생은 삼십 대부터라고 말하던데, 나는 빠순질 역시 삼십 대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야 좀 할 만해졌다고나 할까. (본문 중에서 14-15쪽)

소설을 읽는 동안, 나의 빠순이 생활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마지막 빠순이 생활은 2007-2008년이었다. 졸음을 참아가며 늦게까지 일하고, 눈 뜨면 부리나케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쳇바퀴 같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그때,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늘 신났다. 회사 로비에서도 둠칫둠칫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그들의 에너지를 비타민처럼 삼키며 지냈다. 그 무렵 처음으로 삼십 대 빠순이 언니들을 만났다. (사실 이 언니들이 십 대들과 놀아주지는 않으니. 나는 20대 초중반이었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 언니들과 죽이 잘 맞았다) 직장에 다닌다고 해봐야 아직 신입사원에 불과했던 나는, 언니들이 월차를 쓰고 서울에 올라와 삼일 연속으로 콘서트를 보고, 그러는 동안 콘서트장 근처 호텔에서 지낸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더랬다. (소설에 나오는 그 대사, 언니들도 똑같이 했다.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그들의 사랑은 ‘음, 보기 좋네. 그러니 울적할 때마다 너희의 사진을 꺼내 보겠어!’ 정도에서 결코 그치지 않는다. 다가갈 수 있는 만큼 다가간다. 손을 쭉 뻗으면 그의 발끝에 손이 닿을 듯 말 듯 할 때 말도 안 되는 쾌감을 느낀다. 그렇게 끝없이 열정적일 수 있는 것은 그 사랑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내 모든 존재의 이유를 붙여가며 아이돌을 사랑하고서도 그에게 그 사랑이 닿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고- 당연히 닿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절망한다. 내 마음을 다 퍼주고 싶었으면서도 그가 외면할까 봐 주지도 갖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기 일쑤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우습고도 깊은 것이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보다 늘 우위에 있는 감정은 ‘보고 싶다’였다.

항상 보고 싶었다. 보러 가는 길에도, 보고 있을 때에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44-45쪽)

그 마음이 군데군데 진하게도 베여있어서 좋았다. 삼십 대가 무슨 아이돌이야-하고 눈살을 찌푸리던 그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었다. 책을 덮을 때쯤 확실히 알게 될 텐데, 이게 그냥 한낱 장난 같은 마음은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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