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도상희 지음 / 뜻밖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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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20대의 8할을 보낸 집이 있다. 한남대교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려 북적북적한 길을 지나다 보면 조용하고, 때로는 스산하기까지 한 오래된 동네가 나온다. 나의 집은 그 어디였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한걸음 한걸음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 올라가야 했고, 가만히 서 있기도 더운 날에는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전에 야심 차게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가던 밤, 누구라도 좋으니 목소리가 필요하다며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던 밤. 괜찮지 않지만, 괜찮지 않을 것도 없던 어떤 날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하루하루의 어떤 날들을 소요하고 있는 그녀를 상상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작은 것에도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소녀. 하지만 오래 볼수록 그 안의 복잡한 마음들이 배어 나왔다. 누군가에게 꼭 안기고 싶은 마음, 어젯밤의 복잡함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오늘을 힘차게 살아갈 마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일에 대한 진심. 그런 것들이 오늘의 나와, 또 몇 년 전의 나와 겹쳐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혼자일 때는, 연애를 하면 삶이 좀 더 다채로워질 것 같았고- 결혼을 하면 요동치는 마음들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줄 알았다. 30대가 되면 내 삶에 대한 길이 어느 정도 보일 것이라 생각했고, 40대가 되면 어디엔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연한 기대였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나이들을 지나고 보니,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며 내 삶의 기대는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채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막연하지만 당연했던 기대들은, 사실 죽어라 노력해야 될까 말까 한 것이었다는 것도.

연필을 깎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너무 욕심내어서도 안되고, 해야 할 것들을 게을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었다. 복잡했던 일들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러는 사이 얼굴에 밉게 난 뾰루지가 사라졌을 때 오는 반가움 같은 것을 잠시 맛보기도 했다. 오늘을, 또 오늘 내 옆을 지키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런 소소한 반가움이 자주 찾아오겠구나 생각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을 예쁘다 생각할 수 있는 오늘의 여유, 10년 후의 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삶의 태도. 모두 모두 밑줄 쫙 긋고 메모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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