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 영원한 내부고발자의 고백
신평 지음 / 새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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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군가 말해야 할 때, '사법 독립'과 '사법 불신'
이라고 거창하게 써놓고, 한참이나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만 봤다. 어떤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법도, 법원도 잘 모른다. 하지만 사법부가 고인 물이라는 데는 확실히 동의한다. 사실 사법부가 흐르는 물인 것도 이상하다. 그들은 어느 정도 사회와 유리되어, 보호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 책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는 전 경북대 로스쿨 교수였던 신평의 내부고발 일지다. 일기 형식으로 쓰여있어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만(때로 필요 이상으로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부분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 어느 사건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기도 했다.

사실 그는 1993년 사법부에서 돈 봉투가 오간다고 주장하며 '사법부 정풍'을 요구했던 자다. 그 때문에 최초로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책에 쓰인 사건은 로스쿨 안에서의 교수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고발이었다. 함께 중국 출장을 갔던 동료 교수가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경북대 총장의 부당인사에 맞서 학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렸다. 이는 명예훼손 혐의 기소로 이어졌다.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항소심은 첫 공판 준비기일에 결심(검사 구형 및 피고인 최후변론 절차 등을 밟는 심리)을 하고 곧바로 벌금 500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신평 교수가 낸 증인 신청은 모두 기각됐다. 대법원은 아무런 이유 없이 1년 8개월간 심리를 하지 않다가 신평 교수가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자 갑자기 주심 재판관을 바꾸고 곧바로 ‘상고기각’ 판결을 내렸다. 벌금 500만 원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신평 교수는 대법원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내부고발들은 (거의) 언제나 실패하고, 조직은 잔인한 보복을 가한다. (으레 모두 재임명되는 형식적인 절차였음에도)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하고 법조계의 많은 인사로부터 모멸의 취급을 받았던 그는 이제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도 차가운 시선에 몸을 움츠린다. 더 이상 학생들 앞에 설 수 없다고 썼다. 어쩐지 그 마지막은 조금 안쓰러웠다. 하지만 읽는 동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설마, 법원이 그럴 리가 없어...라든지)이나 정의의 부재에 대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한 가정의 가장이 고독한 싸움을 해나가는 과정 정도라면 모를까. (게다가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려니, 생각하는 신앙인의 태도 역시 책의 주제와 엇나가는 부분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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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던 법정 싸움보다, 로스쿨에 대한 입장들이 눈에 더 띄었던 것은 나뿐일까. 로스쿨이 문제라고 전해만 들었지 그 안에 어떤 문제들이 숨어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가 집어주는 로스쿨의 문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의 사례를 가지고 와 우리나라의 로스쿨에서 어떤 점들을 개혁해야 하는지 집어주는 부분도 좋았고,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합격해도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나온 소수의 학생과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로스쿨 학생들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본문 중에서, 236쪽)"라고 사이다 발언을 해 준 것도 반가웠다. (그 문장 덕분에 그의 다른 의견들에도 더 깊이 동의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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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쩐지, 이 이야기는 일기 형식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인간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정의를 짓밟는다. 양심의 소리를 막는다. 순진을 가장한 교활한 웃음을 띤다. 세상은 어차피 그런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본문 중에서,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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