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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주부턴가, 핸드폰이 이상했다. 다른 기능은 다 멀쩡한데, 전화가 오면 벨이 울리지 않고 부재중 전화 목록으로 남았다. 재택근무자에게 전화 기능은 밥줄이나 다름없어서, 전화기를 얼른 바꿔야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대체 몇 번째 아이폰인지 모르겠다. 나는 꽤 오랫동안 아이폰만 써왔다. 한동안은 새로운 버전의 아이폰이 나오면 바로바로 새 기기로 갈아탈 만큼 충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이제 익숙해서 쓴다. 유료로 결제한 어플이 너무 많아 버릴 수 없기도 하고;ㅁ;...) 핸드폰을 바꿔야지, 생각하니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아이폰x가 눈에 확 들어왔다. 곧 출시된다는 아이폰xs의 기능도 괜히 한번 살펴봤다. 그러다 에이, 뭐 됐어-하는 마음으로 아이폰7을 아주 저렴한 값에 샀다. 요금에 기기 할부금을 얹지 않고 일시불로 기기를 사는 기분은 왠지 좀 이상했다. 어쨌거나,
최신 기기가 아닌 출시된 지 한참이나 지난 기기를 선택한 내가 낯설었다.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지만, 내게는 기계에 대한 물욕이 있다. 궁금하면 꼭 써봐야 하는 성격이라 90년대 후반 마이마이부터, 2000년 32Mb 짜리 목걸이형 mp3, 소니 cd플레이어, pmp, 민트패드, 넷북 등등의 온갖 기계들을 써봤더랬다. 물론 지금도 갖고 싶은 기계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인다 한들, 지금의 내 라이프스타일에서 그것들이 빛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그럭저럭 참아진다.
키득키득하며 <사물의 중력>을 읽었다. 군데 군데서 배어 나오는 저자의 위트가 귀엽다 생각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내 얘기 같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기계와 관련한 부분에서 그랬고, 책에 깔려 죽을지 모른다 했던 부분에서 그랬다. 만약 27인치 트렁크 하나에 내 삶을 몽땅 집어넣어야 한다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게 될지도 생각해보았다. "이 책들은 그냥 여기에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난다고!" 큰소리쳤던 책들 중 몇 권이나 트렁크에 넣게 될까. 데스크탑은 너무 크고, 노트북은 너무 오래되었으니 이참에 가볍고 성능 좋은 노트북을 하나 사야겠다,라고도 생각했다. 노트를 펼쳐 꼭 챙겨야 할 물건들의 리스트를 적고 있자니,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은 의외로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노트, 열두 색 색연필, 연필깎이, 손톱깎이, 치간칫솔과 치실, USB 같은 것.
뭔가를 잃는다는 것, 놓는다는 것, 떠나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리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고여 있을 때보다 흘러갈 때 훨씬 건강하다. (본문 중에서,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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