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전의 세계 리커버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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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강자든 약자든, 우리는 사회의 불평등, 그로 인한 부조리들을 끌어안고 산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그것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그러다 문득, 그 불평등이 손으로 만져질 듯 생생해졌을 때는 분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분노가 여럿 모였을 때는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서부터 기인된 것이었던지는 생각해 본 바 없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기 훨씬 전부터,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래왔기 때문이다.

루소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회적 통념에 돌을 던진다. 태초의 인간을 상상하며 평등했던 인간이 어떻게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인간이 타락해왔는지를 쓴 것이다.


조그만 땅에 울타리를 치면서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기에 충분히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최초의 인간이 바로 시민사회의 진정한 기초자였다. 말뚝을 잡아 뽑거나 도랑을 채우면서 자신이 동료들에게 “이 사기꾼의 이야기를 따르고 있다는 것에 주의하라. 만일 땅의 모든 결실들이 모든 사람에게 속하며 땅 그 자체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잊는다면 당신은 타락한 것이다”라고 외친다면, 이 사람은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으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공포와 불운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해 주었을까?

 

인간은 오랜 문명과 사회생활의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수많은 원인에 의해, 숱한 지식과 오류의 획득에 의해, 그리고 신체의 조직에 생긴 여러 가지 변화와 정념에 가해진 계속적인 충격으로 인해" 애초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현저한 변모를 겪어왔다. 따라서 현존하는 인간에게서 자연 상태의 근원적인 면모와 문명에 의해 형성된 인위적인 면모를 구분해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했듯, 누군가 처음으로 나서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외쳤고 그 말을 들은 자들이 그것을 그의 것이라 쉽사리 믿어버렸다면, 인간 불평등의 시작은 그 순간일지 모른다. 가장 강한 자 또는 가장 궁핍한 자가 그의 힘이나 욕구를 타인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로 생각함에 따라 평등은 깨지고, 뒤이어는 가장 끔찍한 무질서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광대한 숲은 인간의 땀으로 적셔야 할 들판으로 변했으며, 머지않아 그 들판에서는 수확과 더불어 예속과 비참이 싹트고 증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본문, 116-117쪽)

 
여러 명 사이에서 누군가 더 강한 힘을 가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나'와 '타인'을 함께 보고 비교함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나의 존재가 상대화되고 타인의 시선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 된다. 서로의 차이에 대한 비교 의식과 자신의 우월성을 대중적으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소유욕과 결합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것은 비단 '누가 더 사과를 많이 가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사과는 (그 수가 제일 많지는 않더라도) 유난히 윤기가 나며 달콤해 보일지 모른다. 따라서, 루소는 정치를 인간의 사회적 삶의 핵심적인 결정 요인이라고 보았다. 당시 사상가들이 정치보다는 경제적 요소나 사회적 계급, 또는 여론의 역할을 더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보았던 것을 상기한다면 루소는 굉장히 강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셈이다.

어쨌거나 루소가 봤을 때(그리고 누구나 생각하듯이) 인간의 불평등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들이 꼭 그렇게 불평등한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할 당위성도 없다. 사회의 질서는 새롭게 바꾸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공동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모든 것을 리셋하고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지나친 불평등이 존재할 때 그것을 고쳐나갈 수는 있다. (어렵겠지만) 모두가 그것을 삶의 전제로 두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뭔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 책을 읽고 다시 보는 '프랑스 혁명'의 순간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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