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lastmarx > 원전에 충실한 로스돌스키의 맑스 연구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 1
로만 로스돌스키 지음, 양희석 옮김 / 백의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원전에 충실한 로스돌스키의 맑스 연구

먼저 이 글의 구성에 대해 밝힌다. 첫째, 맑스가 작업한 ‘정치경제학 비판’의 텍스트를 소개한다. 둘째, 그 동안 맑스를 읽어온 사람들과 나름대로 의미 있게 해설한 이론가들에 대해 간략히 비판한다. 끝으로 로스돌스키의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백의, 2003)이 어떤 책인지 살핀다. 서평은 가능하면 짧게 쓰고 책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 책이 다룬 내용을 간추리는 것보다 기존의 안내자들과 그가 어떻게 다른지 살피는데 역점을 두겠다.

Ⅰ.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텍스트

맑스는 살아있을 때도 사후 세기가 두 번 바뀌는 기나긴 시기에도 대단한 명성만큼 악명이 높았고 끈질기게 비난 받았다. 맑스를 부분적으로 읽은 맑스주의자들 즉 후예(Epigone)들은 그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명했으나 더불어 그가 비판하며 제기한 여러 학적 문제들과 정치 · 실천적 과제들로 고민했다. 반면 그의 작품을 거의 읽은 적이 없는 - 어쩌면 단 한 줄도 직접 읽지 않았을 - 자본주의자들은 손쉽게 또 무책임하게도 그를 시대착오적인 몽상가로 비난하거나 ‘죽은 개’ 취급했다.

맑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데 꼭 읽어야할 주요 작품들- 출판한 책, 출판 못한 책, 그가 남긴 노트 등을 포함 -을 집필순서 대로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맑스의 주요 작품들

이 가운데 <공산주의 선언>은 누구라도 읽고 공감하기 쉽지만 『자본』은 통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간단히 말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그 주제의 전개방식은 왜 이리도 복잡한지 작가의 의도 자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전 세계의 석학들이 그걸 해명하기 위해 고민하고 논쟁해온 주제이므로. 『자본』은 전체 분량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미완성이고 그것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서술방법- 연구방법은 은폐되어 있다 -이 깊은 탐구를 요구한다. 마치 드러난 상품과 그것에 들어있는 가치의 관계처럼 한 눈에 간파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의 가격은 숫자로 명시되어 있고 다른 책의 가격과 쉽게 비교되지만 그 책이 지닌 학적 가치는 독자, 나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것이다.

맑스의 작품들 가운데 오로지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작성된 것들만 골라보자면 <경제학-철학 초고>, <철학의 빈곤>, <임금노동과 자본>, <임금, 가격, 이윤> 등도 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특히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자본 - 정치경제학 비판』, 『잉여가치학설사』가 기본 텍스트다. 이 가운데 나는 ‘잉여가치학설사’를 읽어본 적이 없다.

독일어본을 참조하지 않을지라도 이 세 텍스트를 통독하지 않은 채 정치경제학(비판)을 논하거나 그것을 주제로 한 이론서들과 해설서들을 먼저 읽고 논하는 것은 정직한 학습 태도가 아니다. 무릇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하거나 정도를 걷지 않으면 선생도 제자들도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 테니 범위를 좁히자면 우선 ‘자본’과 ‘요강’을 읽어야 한다.

더 줄이면 ‘자본’을 최소한 ‘자본’ 1권만이라도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자기 영혼으로 맑스의 정신과 대면해야 한다. 아울러 ‘요강’의 <서설>과 몇 개의 주요 장-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형태들, 고정 자본과 사회의 생산력이 발전 -들을 선별해서 살피고 거기에 길지 않은 1859년의 서문(<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도 정독해두면 좋겠다.

 이렇게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저작들을 소개한 이유는 그것들에 대한 읽기가 그것들에 대한 해설서들과 방법이론서들을 공부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는가. 맑스 텍스트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맑스에 대한 참고서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 해설서에서 해설서로만 넘나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그 선생들이 자기 책을 읽기 전에 맑스를 먼저 읽으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놓아도 소용없다. 그들이 맑스를 충분히 음미한 다음에 그 책들을 썼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주객이 바뀌고 본말이 전도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아마도 선배들이 원전부터 읽고 참고문헌을 섭렵하여 권유하지 않고 그들부터 그 따위로 학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로스돌스키는 진정 맑스 원전에 충실했던 성실한 학생이며 독자였다.

Ⅱ. 맑스주의 안내자들

 1. 정치경제학 비판 참고문헌과 연구사

맑스를 보급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맡은 최초의 안내자는 물론 엥겔스였다. 이후 카우츠키는 자료를 넘겨받았고 한때 ‘맑스주의의 황제’로 군림했다. 이들의 역사주의적, 경제주의적 설명방식은 이해하기 쉬운 만큼 문제점도 낳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기라성 같은 맑스주의자들의 주장, 해석의 장단점, 이후에 끼친 영향 관계 등을 길게 논하지 않고 미하엘 하인리히(Michael Heinrich)가 작성한 글을 소개하는 게 적절하겠다. 곧장 한국에 영향을 끼친, 끼치고 있는 알뛰세르와 네그리로 넘어간다.

정치경제학비판 관련 참고문헌 목록 및 해설  

2. 알뛰세르의 ‘자본 읽기’ 

알뛰세르는 『자본 읽기』에서 ‘자본’과 ‘요강’을 텍스트로 하여 그의 목적인 반헤겔주의의 흔적을 색출한다. ‘뜨거운 가슴’을 지닌 채 휴머니즘으로 똘똘 뭉친 이전 혹은 당대의 맑스주의자들에 비해 그가 명석한 두뇌와 심오한 과학이론으로 무장한 채 맑스를 요리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특히 그만이 맑스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그 독해방법만이 올바른 길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또 필요했던 것은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이론적 도구와 이데올로기적 무기였다. 스탈린과 알뛰세르가 그렇게도 과학을 내세웠지만 그런 특징은 19세기의 프루동이 선배 아니던가. 맑스가 『자본』에서 “어떤 學派도 프루동학파처럼 ‘科學 science’이라는 말을 남용한 일이 없다”고 조롱했지만 그건 그가 소련의 이데올로그들과 알뛰세르와 한국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닌의 글로 스탈린의 감수로 통치에 필요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맑스레닌주의를 교리로 만드는 게 필요했던 것처럼 그 독재가 비판받고 권위가 퇴색해도 사람들은 또 다른 매개자를 찾는다. 게다가 알뛰세르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옹호하니 비록 구조주의에 대한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친화성을 갖고 있다. 하여간 유행은 오래 지속된다.  

3. 네그리의 ‘자본을 넘어선 요강’ 

알뛰세르주의자들이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사유를 소곤거리며 맑스주의 과학자들로 침잠해가는 동안 네그리는 『맑스를 넘어선 맑스』를 통해 ‘요강’을 강의한다. 그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전자가 맑스에게서 구조주의를 찾아냈다면 후자는 아우또노미(autonomy)를 발견한다. 그들의 공통 과제는 헤겔-맑스주의적 헤게모니(hegemony)의 전통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양은 헤겔적 용어니 곤란할 게다.  

방대한 말과 글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에게, 인류사에 큰 영향을 끼친 어떤 학설이나 종교의 창시자, 실질적인 건축자에게 단절의 역사가 없겠는가. 30년간 목수였던 예수는 이후 마지막 3년만 포교한다. 맑스에 비하면 예수는 사람에서 신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심지어 죽었다가 부활도 한다. 이런 존재의 변신에 비하면 인식론적 단절쯤이야 그리 놀라운 발견도 아니다. 더군다나 기독교는 Saul이 Paul로 거듭나는 단절과 예수 대신 사도 바울이 신약을 채우는 역전으로 형성되지 않았는가. 작심하고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휩쓸리지 않는 균형감각이다. 철저한 학자들은 가끔 그걸 잊는 매력이 있다. 기존의 독법과 해석방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전체를 오류로 규정하고 혹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독법과 해석방법만이 구원 받을 길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런데 과연 맑스를 제대로 읽었는지 아닌지 누가 심판한단 말인가.  

4. 매개자를 필요로 하는 학습 풍토 

내가 알뛰세르와 네그리에 대해 어떤 반감을 갖고 그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진정 언급할 가치가 없으면 논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책을 감명 깊게 읽어왔다. 새로운 시각, 독창적인 발상은 언제나 자극을 주고 도움이 된다.  

다만 스탈린주의에 이어 또 다른 매개자, 안내자, 해설자를 찾아 옮겨 다닌 맑스주의자들에 대해 한번쯤 그러한 과정에 대해 돌아보자는 것이다. 이런 해석 저런 해석을 모두 용인하는 절충이나 어떤 조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참고서부터 읽고 맑스 작품 읽기를 소홀히 한 채 쉽게 다른 견해를 재단하는 태도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매개(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맑스를 만나야만 헤겔이든 무엇이든 넘어서지 않겠는가. 

맑스의 주요 작품들을 꾸준히 읽고 주제에 따라 핵심적인 저작을 자기 눈으로 먼저 음미한 독자라면 나중에 레닌이든 알뛰세르든 네그리든 그 누구의 도움을 받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당대 최고의 두뇌들이 자기들이 만난 맑스에 대해 설명해주겠다는 데 그걸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맑스가 해금된 이래 너무 짧은 시기 동안 여러 편향들이 한꺼번에 수용됐다. 게다가 처음부터 그 맑스는 특정한 시각으로 정립된 맑스(레닌주의)였다. 그러다가 87년 항쟁의 기운은 스러지고 소련과 동구가 무너졌다. 이제 여유를 갖고 맑스를 읽게 됐을 때 또 다시 새로운 유행들이 지나갔고 점차 사람들은 맑스를 읽을 필요가 없게 됐다. 

학의 관심 대상이 정치적 필요, 정파적 이해관계, 노선의 차이, 유행에 따라 부침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드문 현상도 아니다. 그와 달리 꾸준히 맑스를 읽고 주목받는 새로운 이론들을 검토하고 장삿속이 아니라 꼭 필요한 논의니까 공유할만한 책을 번역하는 그런 맑스 연구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 천박하고 혼란스러운 풍토를 조금씩 정화했을 것이다. 

로만 로스돌스키의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은 1968년에 발표되고 2003년에 번역됐다. 이 책은 더 일찍 번역되고 더 많은 논문에서 언급되고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받았어야 했다. 20세기 초중반의 정치경제학 관련한 숱한 오해와 헛소리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로스돌스키의 책을 보다 젊어서 품었더라면 시간낭비를 줄이고 정신적 고통을 덜 겪었을 것이다. 이제야 우리에게 다가온 로스돌스키를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고 또 그만큼 반갑다. 

Ⅲ. 로스돌스키의 명성과 출판 현황 

로스돌스키의 ‘맑스 자본의 형성’ 연구에 대한 명성은 결코 ‘과잉생산’ 된 게 아니라 ‘과소소비’ 되었다. 읽지 않으니 선전할 수 없고 아무도 선전하지 않으니 더욱 소외된다. 사실 그런 무관심에 의한 불운은 이 책을 쓰게 만든 맑스의 ‘요강’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1. 원제, 출판 현황, 편집 상태 

Roman Rosdolsky는 1968년에 『Zur Entstehungsgeschichte des Marxschen ‘Kapital’; Der Rohentwurf des Kapital 1857-58』을 출판한다. [맑스 ‘자본’의 형성사; 1857-58년의 자본 초안]이란 제목으로 된 이 노작은 1973년에 『‘資本論’ 성립사: 1857-58年の ‘資本論’ 草案』으로 일역되고 1977년에 두 권의 『The Making of Marx’s ‘Capital’』로 영역된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는 2003년에 두 권의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백의)으로 등장한다.  

* 1권은 양희석이 2권은 정성진이 분담하여 초역하고 서로 검토하여 교정하고 용어와 문체를 통일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1권과 2권에 들어있는 똑같은 글 <일러두기>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사: 1857-58년의 자본론 초고』를 1권에선 초고로 2권 <일러두기>와 <역자후기>에선 초안으로 번역했다. Rohentwurf를 초고로 하던 초안으로 하든 상관없으나 통일하는 게 좋겠다.
* 하지만 그 문제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초고』라는 제명과도 연관된다. 같은 출판사에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라 번역했는데 로스돌스키가 거론하는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Rohentwurf, 1857-58』에서도 동일한 초고/초안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역자들은 혹은 편집자는 번역상의 용어 통일에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한편 1권 42쪽의 “1875년 연구 개요 도식”은 1857년의 오타이고, 2권 42쪽의 각주 41)은 46)의 실수인 것 같다.
* 2권 385쪽의 각주에서 ‘맑스’와 ‘마르크스’를 모두 사용하는데 책 제목을 제외하고는 통일하는 게 좋겠다. 그 밖에는 전체 832쪽 가운데 비문과 오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공들인 번역과 편집이다.
 

2. 로스돌스키의 행운과 노고 

로스돌스키는 1955년 12월에 완성해둔 <서문>을 “1948년 필자가 당시로서는 대단히 희귀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초고』 사본을 살펴볼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을 때, 이 초안이야 말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있어 근본적인 저작이라는 것이 곧 명백해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939년에 출판된 모스크바 원판 서너 개의 사본 가운데 하나를 뉴욕에서 넘겨받은 것이다. ‘요강’은 독일에선 1953년에 출판됐고 영역본은 1973년에야 나왔다.  

그러한 행운을 얻은 로스돌스키는 ‘요강’을 “마르크스 자신의 언명을 통해 설명”하기로 마음먹는다. 많은 저자들이 맑스가 서술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설명한다고 하지만 로스돌스키만큼 치밀하고 성실하게 자료를 찾고 검토하고 적절하게 인용하여 재배치하는 건 여태껏 보지 못했다.  

다른 해설자들과 마찬가지로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텍스트들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그 텍스트들을 읽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요즘처럼 편집과 검색이 수월한 개인용 컴퓨터와 문서편집기가 있던 시절도 아닌 20세기 중반에 로스돌스키는 ‘요강’, ‘자본’, ‘잉여가치학설사’의 수천 쪽을 종횡무진 누비며 각 주제를 헤쳐 모은다. 맑스가 동일하게 주장하고 표현한 주제는 출처만 소개하고 다르게 표현하거나 생각이 달라진 곳은 자세하게 인용해서 비교한다. 보통 종횡무진이라 하면 졸속으로 빠르게 휘젓고 다닐 때 쓰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맑스는 말년에 알게 된 청년 카우츠키를 싫어해서 엥겔스에게 보내버렸는데 만약 로스돌스키가 작업을 도와주러 왔다면 ‘자본’ 3권을 모두 정리해서 마무리했을지도 모르겠다. 유능한 비서의 도움을 받아 애초의 포부였던 6부작의 작업을 좀 더 진척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로스돌스키의 머리 속엔 맑스의 전 저작과 편지 내용이 저장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원래 학이라는 게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떤 평론가가 어떤 작가의 작품 하나를 연구하기 위해서도 그의 다른 작품들도 섭렵하고 인터뷰와 비평들도 찾아보는 게 아닌가. 

3. 논의의 새로운 수준 

여기서 잠깐 앞에 소개한 미하일 하이인리의 <정치경제학비판 관련 참고문헌 목록 및 해설>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의 출현 의의를 언급한 부분을 음미해보자.  

{Grundrisse는 Roman Rosdolsky, Zur Entstehungsgeschichte des ‘Kapital’, Frankfurt 1968의 방대한 저작의 출판으로 그 진정한 “출현”을 경험했다. 그 저작의 대부분은 Grundrisse에 관한 자세한 주석이다. 그것으로 맑스 텍스트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맑스의 기본적인 서술을 상당히 일반적으로, 개별적인 문제를 상세히 토론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맑스의 전체 텍스트가 체계적으로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연구되었다. Rosdolsky가 서론에서 Grundrisse에 중심이 되는 “자본 일반”의 범주를 강조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 Kapital의 구조까지 해석한 것은 이후의 토론에서 특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나서 그 해석은 70년대에 많은 Kapital 해석에 받아들여졌다). 이 해석에 의문스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자본 일반”이라는 범주를 Kapital 전3권의 단 한군데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해석은 다른 여러 방향에서 계속 추구된 맑스 논증의 범주논리에 대한 인식을 민감하게 하였다.} 

로스돌스키는 서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는 헤겔의 영향이 얼마 되지 않는 각주에서만 명시적으로 표출되어 있다고 한다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초고』는 헤겔, 특히 그의 『논리학』을 수없이 언급한 저작으로 묘사되어야만” 한다며 레닌과 루카치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헤겔과의 관계가 피상적으로만 검토된 것을 비판한다.  

그는 “금세기 초의 30년처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로 구성된 학파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면” 자신은 ‘요강’ 해설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 마지막 세대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대부분 히틀러와 스탈린의 공포 정치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루빈과 동료들은 “스탈린에 의해 숙청되어 강제수용소와 감옥에서 처형됨으로써 ‘분쇄’되었다”.(2권 367쪽) 로스돌스키는 67년에 이 서문을 고쳐 쓰면서 ‘요강’이 출판된 지 14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Ⅳ. 원전에 충실한 길잡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을 ‘요강’을 해설한 책으로 소개하는 이들도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책의 성격을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요강’이 많이 언급되긴 하지만 로스돌스키는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자본’, ‘잉여가치학설사’의 모든 원문을 고루 인용한다.  

가령 2장 <마르크스의 저작 구성>에서 로스돌스키는 6부작이 왜 ‘자본’ 3권으로 변경됐는지를 논하며 “마르크스 저작의 개요와 관련하여 필자가 고려한 개요 시안과 개요에 대한 메모”라는 목록에서 14개의 출처를 밝힌다. ‘요강’이 6개, 편지가 6개, 59년 ‘서문’과 ‘잉여가치학설사’가 하나씩이다.(98쪽) 이어지는 도표를 보면 ‘임금 노동’은 자본 1권 6장의 ‘임금’으로, ‘토지 소유’는 3권 6장의 ‘지대’로 축소되어 들어갔으며 ‘국가, 외국 무역, 세계 시장’은 작업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요강’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어떻게 현전하는 ‘자본’이 형성되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맑스 자본의 형성(사)’인 것이다.  

1. 맑스를 따른 주제별 검토 

로스돌스키는 1권 1부에서 ‘요강’의 기원과 맑스 저작의 구성을 설명하고 2부에서 화폐의 기능을 세 가지- 가치 척도, 유통 수단, 화폐로서의 화폐 -로 고찰한다. 3부에서는 생산을 검토하고 부록에서 맑스의 임금 이론과 궁핍화 이론의 진실을 논한다. 부록의 내용도 매우 흥미로운데 맑스주의 논쟁사에서 의견이 분분한 주제이므로 로스돌스키의 해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권의 4부에서는 유통 과정에 관한 부를 자세히 다루고 5부에서는 자본, 이윤, 이자를 논한다. 이윤율 저하 법칙과 그것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반박도 유용하다. 6부 결론에서는 가치 법칙의 역사적 한계와 맑스의 사회주의 사회론을 논한다. 이어 7부 비판적 여담에서는 맑스의 재생산 표식을 둘러싼 논쟁을 다루는데 러시아의 나로드니키, 합법적 맑스주의, 레닌의 오류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게 된 정치적 맥락을 지적한다. 아울러 힐퍼딩과 로자 룩셈부르크도 비판을 피해가지 못한다. 이어 숙련 노동의 문제와 관련해 뵘-바베르크를 비판하고 조안 로빈슨과 네오 맑스주의 경제학의 최근 논의까지 반박한다.  

2권은 1권에 비해 수식과 재생산 표 등이 많아 좀 지루하지만 로스돌스키가 기존 해석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그들이 왜 오해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게 역시 묘미다. 그는 당시의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이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맑스가 ‘요강’에서 썼듯이 “자본은 필연적으로 자본가이다. 물론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은 필요하지만 자본가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라고 했을 때 프루동과 바쿠닌 등의 자본관을 비판한 것이지만 그것은 훗날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 국가 지배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비판이다.  

2. ‘자본 일반’과 ‘매개 범주’ 

로스돌스키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맑스의 변증법과 방법에 대해 논한다. 1939년 ‘요강’이 공개된 것을 두고 그는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하게 연구’하는 신 사과를 씹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초고』를 연구함으로써 동일한 목표에 직접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2권 368쪽)고 기뻐한다. 즉 레닌이 『철학 노트』에서 헤겔 논리학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세기가 흘렀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그 누구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던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요강’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레닌은 루카치가 그랬듯이 맑스를 직접 읽으며 나중에 밝혀질 방법을 앞서서 헤아렸다. 반면 로자는 1917년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학술이나 예술에서 단순성과 평정, 대담함을 높이 평가한다. 이 때문에 헤겔적인 로코코풍 장식으로 치장된 저 유명한 『자본론』 1권이 그 당시 나에게는 아주 역겹게 느껴졌다(물론 이렇게 말하면 당의 관점에서는 5년간의 징역과 10년간의 당원 자격 정지에 처해질 것이다)”(2권 261쪽)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스돌스키는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을 통해 ‘자본 일반’의 추상 수준과 ‘다수 자본’의 추상 수준의 엄격한 구별을 제시했다. ‘자본’ 1, 2권과 3권을 분별한 것이다. 또한 ‘요강’이 헤겔 변증법의 범주들에 기초한다며 ‘자본’의 체계에서 ‘매개 범주’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3. 고전 맑스주의의 명맥 잇기 

<역자 후기>에서 양희석과 정성진은 “실제로 로스돌스키의 원래 직업은 경제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트로츠키주의 투사였다”고 소개한다. 그가 1930년대부터 끊어진 고전 맑스주의의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승한다는 실천적 문제 의식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는 것이다.  

로스돌스키는 1898년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했고 1925년 스탈린의 탄압으로 당에서 쫓겨났다. 이후 맑스, 엥겔스의 유고를 연구했으며 1929년 비엔나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가 됐다. 1934년 르보프 대학 경제사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아이작 도이처 등과 함께 트로츠키주의적 반대파 투쟁을 조직했다. 그러다가 그 지역을 1941년 나치가 점령했고 1942년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종전까지 아우슈비츠 등의 강제수용소를 전전했다.  

그는 1947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1968년 사망하기까지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비역사적’ 민족의 문제』(1964)를 썼다. 엥겔스를 비판한 책이다. 만델은 그의 『후기 자본주의』를 로스돌스키에게 헌정했다. “이 혼돈의 세기의 암흑기에 혁명적 맑스주의의 이론적 전통이 지속될 수 있게 했다”면서.  

Ⅴ. 정치경제학 전체의 논박으로서의 ‘비판’ 

1. 원전보다 어려운 해설서들 

역자들은 이미 1992년에 이 책의 번역을 기획했으나 지체되다가 2001년에 백의출판사의 제안에 따라 번역 작업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역자들은 후기의 각주에서 “알튀세르주의 입장에서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방법을 다룬 자크 비데의 『자본의 경제학 철학 이데올로기』와 자율주의 입장에서 ‘요강’을 주해한 네그리의 『맑스를 넘어선 맑스』가 출간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입장에서 고전 맑스주의의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맑스의 ‘요강’ 그 자체에 대한 주해의 완전성이나 엄밀성의 측면에서 로스돌스키의 책에 비견될 바가 못 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은 독자들이 직접 ‘요강’을 읽고 그 책들을 비교해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역자들은 “수많은 마르크스 경제학 해설서들이 번역 소개되어 있지만 대개는 훈고학식으로 접근해서 원전보다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렵게 된 것들, 혹은 반대로 과도하게 ‘소재’만을 요약 · 도식화하여 마르크스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2권 386쪽)라고 한다. 로스돌스키의 책은 분명 심오하고 난해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문체도 설명방식도 매우 명료하다. 만약 맑스가 20세기의 맑스주의자들의 정치경제학 비판 해설서들을 모두 살폈다면 아마 로스돌스키에게 ‘나의 뒤죽박죽된 논고들을 잘 정리했다’고 격려했을 것이다. 

2.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비판 

맑스는 1850년과 51년에 52명의 경제학자들의 책을 인용한 초록을 작성했다. 그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5주 후에는 이놈의 경제학을 전부 청산할 수 있을 정도로 진척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마무리되면 나는 집에서 경제학의 초안을 작성하고 박물관에서 또 다른 과학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경제학이 싫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과학은, 종종 극단적으로 미묘한 특수한 문제들에 대한 고찰들이 제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스미스와 리카도 이후로는 어떠한 진전도 보지 못했습니다”(1권 26쪽)라고 했다.  

그렇게도 청산하고 싶었던 경제학, 싫증나는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다룬 책을 그는 당시 출판업자들의 거절로 공개하지 못했다. 그 결과 1858년에야 ‘요강’을 마무리했는데, 1857년의 경제 공황으로 사회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부랴부랴 정리한 것이었다. 이후 1859년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일부나마 발표할 수 있었고 1867년에야 『자본』 1권을 출판할 수 있었다. 2권, 3권은 그가 죽고 나서 엥겔스가 정리했다. 

맑스가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하여 노동력, 대상화된 노동량, (노동)시간이라는 척도 등을 길게 논하고 집요하게 연구했다고 해서 그가 그런 가치법칙이 작동되는 사회를 선호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로스돌스키는 “경제학자들은 모두 일반적으로 경제학이 물화된 범주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회적 관계가 서술되는 전도된 방식은 이 생산의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같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수행했을 것이다.”(2권 189쪽)라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 저작의 제목인 ‘정치경제학 비판’ 그 자체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에서 이런저런 학파나 견해의 논박 정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이론적 반영으로서 이전의 정치경제학 전체를 논박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권 352쪽)고 했다. 맑스를 비난하는 이들도 맑스주의자들도 맑스와 로스돌스키가 뜻하는 이 ‘비판’의 의미를 깊이 헤아리지 않고 있다, 오늘날에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