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인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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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해당한 아내, 사라진 여인

스콧 헨더슨은 아내인 마르셀라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비록 캐롤 리치먼이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져서 이혼을 하자고 제안을 하긴 했지만 불편하게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데이트를 제안했고, 마르셀라도 수락을 했다. 하지만 막상 함께 나갈 시간이 되니 아내는 헨더슨에게 비아냥대며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마음이 상한 헨더슨은 밖으로 나가 아내 대신 리치먼을 만나려고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고, 혼자서 바에 앉아 있었다.


바에서 눈에 잘 띄는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인을 발견한 헨더슨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아내와 함께 보내기 위해 예약했던 코스를 함께 보내기로 한다. 헨더슨은 그녀에게 말을 걸고, 둘은 상대방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런 정보도 주고받지 않은 채 저녁을 함께 보낸다. 술 한 잔 마시고, 저녁도 함께 먹고, 연극도 보고.. 헨더슨은 여인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는 건장한 남자 세 명이 헨더슨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형사였고, 아내가 넥타이에 교살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럴 수가..


헨더슨은 피살자의 남편으로 제일 먼저 용의자로 지목된다. 하지만 헨더슨은 사건 추정시각에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인과 함께 있었으니 알리바이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에 대해서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결국 그녀와 함께 있던 카페, 식당, 극장, 심지어 택시운전사까지 찾아 확인을 했지만 모두들 헨더슨이 혼자였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세 시간 이상 함께 있었던 헨더슨도 그녀의 모습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알리바이를 대지 못한 헨더슨은 사형을 언도받고 사형집행일은 하루하루 다가온다.


버지스는 헨더슨을 체포한 형사인데 아무래도 헨더슨이 범인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면회자리에서 헨더슨에게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있으면 이 사건을 파헤쳐 보도록 제안한다. 헨더슨은 학창시절 절친하게 지냈던 존 롬바드에게 연락을 하고 롬바드는 5년 계약으로 남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더슨을 위해서 돌아와 헨더슨을 만난다. 여인은 환상이었을까? 왜 사람들은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인을 보지 못했다고 할까? 롬바드는 헨더슨을 사형의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이제 사형집행일까지는 18일 남았다.


윌리엄 아이리시 William Irish 1903 ~ 1968. 코넬 울리치  Cornell Woolrich의 필명. 미국의 소설가.


유명한 책이었어?

작가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낯설기만 하다. 추리소설이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유명한 책인 것 같다. 특히, 세계 3대(개인적으로는 누가 무슨 이유로 정했는지도 모르는 3대, 4대 같은 건 신뢰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온라인상에서 떠돌아 다닌다. 홈즈도 아니고 에큘 포와로도 아니고 엘러리 퀸도 아닌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고 작품이었다고? 살짝 나의 무지를 책망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추리소설(X), 서스펜스 추적극

내용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헨더슨이 아내인 마르셀라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벗기 위한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단 한 명의 여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형집행일은 점점 다가오고 헨더슨은 구속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결국 남미에서 일하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인 롬바드와 애인인 리치먼, 좀 의심스러운 형사 버지스가 그 여인을 찾아 나서는데.. 증인이 될 것같은 사람은 사고로 죽어나가고, 여인은 어디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독자로서 나는 수많은 가능성을 따져 본다. 그리고 범인이 누군인지 추정해 본다. 그런데..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인을 찾는 주요 역할을 하는 롬바드는 증인들을 찾고 헨더슨을 봤다는 증언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딱히 추리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탐문하고 설득하고 협박도 하면서 사람을 찾기만 한다. 그러니까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추적극의 짜릿함은 느낄지언정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추리극의 지적 쾌감을 느낄 수는 없다.


소설은 194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 반전은 놀랍지만..

읽는 동안 내가 생각한 유력한 용의자는 애인인 캐롤 리치먼이었다. 살해할 동기도 충분하고 사건 시각 전후로 연락이 되지 않은 것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실제 범인은 롬바드였다. ...뭐라고? 그런데 예상을 벗어난 범인은 내 뒷통수를 치는게 아니라 한숨을 쉬게 했다. 개연성을 엿바꿔 먹었기 때문이다.


1. 버지스 형사가 헨더슨에게 자기 대신 여인을 찾을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라고 조언하자 헨더슨은 바로 롬바드를 떠올린다. 범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만약 헨더슨이 롬바드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소설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나.

2. 마지막에 버지스는 롬바드가 범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롬바드가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한다. 헨더슨 한 명 살리려고 다른 무고한 생명이 죽어나가는 걸 막지 않는다고? 형사가?

3. 롬바드가 아무리 입막음을 한다고 모든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입을 꽉 닫고 있는다고?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게다가 헨더슨은 롬바드가 임막음을 한 사람들만 기억하고 형사들은 그 사람들만 탐문수사를 한다. 눈에 확 띄는 오렌지 모자를 쓴 여인을 본 사람을 아무도 찾지 못한다니.. 참 편리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다.

4. 헨더슨씨는 치매에 걸리신 것도 아니신데 세 시간 이상 함께 있었던 여자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못하는 건 왜? 그저 미스터리한 여자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설정을 갖다 붙여 놓았다.

이외에도 개연성없는 설정은 수없이 많다. '환상의 여인'이 헨더슨과 만난지 사흘만에 병원에 입원해서 행적을 못 찾은 건 그냥 넘어가자. 이것도 무리수가 되는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말이지..


형사는 등장하지만 추리는 없고, 추적자가 등장하지만 실패만 한다.


★★★

처음부터 4/5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그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밝혀낼 것인지 굉장히 궁금하고 추적해 가는 모습도 서스펜스 소설로 따지면 여기까지는 정말 괜찮다. 하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읽은 것들이 몽땅 의미없이 뒤집힌다. 엄청난 떡밥을 잔뜩 던져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소설이다. 책 전체를 통틀어 일어난 사건을 부정하고 뒤집어 버림으로써 큰 실망을 안겨주고 끝이 난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 좀 그렇고, 결말은 너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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