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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홀릭 - 유쾌한 런더너 박지영의 런던, 런더너, 런던 라이프
박지영 지음 / 푸르메 / 2010년 7월
평점 :

따끈따끈한 신간인 '박지영'의 <런던홀릭>은 사실 크게 기대하고 펼쳐든 책은 아니었다.
며칠전에 우연히 이 책을 선물받아서 주말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들었는데,
오, 이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다.^0^
여행기 종류는 가끔 읽었었는데, 이 책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저자는 한국에서 10년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런던으로 건너가 3년째 살고 있는 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어린 아들을 키우며 직접 체험으로 알게 된 런던의 모든 것들이 실려있다.
여행기가 아닌, 말하자면 '생활기'.
"사는 것과 여행은 다르다.
런던에 몇 주간, 혹은 몇 개월간 머물며 겪은 런던에 대해 쓴 책들을 보면서,
아, 이들은 너무나도 영국의 화려한 겉모습에 빠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들른 여행지는 아름답다.
경험해야 할 좋은 것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너무 많아서 다 보고 갈 수도 없다.
하지만 한 나라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p8
영국은 참 멋진 나라다.
동네 곳곳에 수목이 우거진 공원이 있고, 각종 미술관은 공짜며, 의료비 또한 공짜다.
실업자에겐 매달 실업 수당을 지급하고, 집 없는 사람에겐 무료로 집을 임대해준다.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 복지정책을 썼다.
마치 잘생긴 데다 공부도 잘하는 전교 1등이 점심 도시락 못 싸온 학급 친구에게
자기 도시락을 죄다 내주듯이, 퍼주고 또 퍼줬다." p26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시장이 있고, 닭들의 비인도적인 사육을 비난하는 유명 요리사가 있으며,
가정적인 남자들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영국인들은 책을 끼고 산다. 공원에서 선탠할 때도 책을 읽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다가 아이가 잠이 들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
번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잠자기 전 침대에서도, 휴양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책을 읽는다.
대부분 페이퍼백으로 된 책이어서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값도 저렴하다." p222
이쯤되면 이곳은 유토피아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일단 살아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강력한 복지제도를 위해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하고,
의료비 무료는 사람들을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가게 만들어서
응급실에서도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기 일쑤며 의사는 환자의 호소에 심드렁해진다.
(사립병원이 있지만 높은 가격 탓에 일반 서민들은 가기 힘들다.)
고등학생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과목만을 선택적으로 공부하는 교육제도는
한 분야에 대해 깊이있는 학습은 가능하지만, 다른 과목들에 까막눈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서
간단한 돈계산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민세를 내러 동네 편의점에 갔다가 겪은 일이다.
20파운드짜리 열한 장과 10파운드짜리 한 장을 점원에게 건넸다. 총 230파운드다.
점원은 내가 준 열두 장의 지폐를 한 장씩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원 얼굴이 점점 홍당무가 됐다.
20파운드짜리 지폐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세더니 한 장을 나한테 돌려줬다. 내가 돈을 더 줬다는 것이다.
옳다구나! 나는 그 돈을 도로 받았다. 그대가 굳이 준다면 내가 받지.
그러더니 남은 20파운드짜리 지폐 열 장을 또 한 번 셌다.
얘는 10 곱하기 2는 200이라는 아주 쉬운 진리를 모르나 보다.
다섯 장만 넘어가면 도대체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p233
읽다보면 어느순간 잠시 갸우뚱해진다.
아니, 그래서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ㅋ
저자는 그저 자신이 살면서 직접 알게 된 모든 것들을 가감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렇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잠깐 여행갔다 온 사람이 아닌, 직접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경제, 정치,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저자의 생활이야기와 맞물려서 내용이 쏙쏙 들어온다.^^
게다가 올컬러로, 거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자가 생활 속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다.
사진이 큼직하진 않지만, 그만큼 많은 사진들이 글과 함께 알차게 들어차있어서
페이지 넘기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는
한국돈으로 무려 1만 5천원 상당을 주고 구입했다는 럭셔리한(ㅋ) 바가지 사진까지~ㅋㅋ
책 뒤쪽에는 저자가 런던에 살면서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한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 부분은 제대로 여행 에세이라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런던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유럽 어느 나라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리가 가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렴한 항공편이 많기 때문이다. (......)
그러니, 주말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불쑥 파리나 베니스로 도시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유럽여행은 런던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p280
암튼 꽤 유쾌하고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가볍게 읽으면서 런던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기도 했고...
읽으면서 그곳의 멋진 부분들에 매료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더 낫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으흥~~ 역시 어디나 장단점이 있는 법이지~~
하지만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수많은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런던은 역시 멋진 곳!이라고 말한다.
근데 어쩐지 나는 그닥 살고 싶은 마음은 안 드는구만...^^;;;
대신 한가한 주말, 그녀의 일상에 들어가 런던을 잠시 둘러보고 왔다. 그리고 꽤 즐거웠다.^^
" '환상적인 런던'은 일주일, 혹은 몇 달간 여행을 왔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나 같은 외국인이 런던에서 살려면 잔 다르크가 되어야 한다. (......)
하지만 그런 소소한 이유로 이곳을 떠나기에 런던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도시다.
나는 이 모든 역경을 공원과 맞바꿀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슬픔을 미술관과 맞바꿀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불합리함을 이곳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와 맞바꿀 수 있다. (......)
따론 정도를 넘는 이 소박함과 실용성, 그리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는
영국 사회에 흐르는 하나의 코드 같다.
자율과 이성의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 속에서 나는 선진국을 보았다." p371-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