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길 떠나는 아이 반달문고 13
임정자 지음, 지혜라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나에 대한 존재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존재를 어떻게 사랑할까에 대한 답을 관계를 통해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자기 내면에

구렁이 한 마리쯤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아니 누구는 구렁이가 아니라 두꺼비나 낙타, 혹은 까마귀일지도

모르는 짐승들을 한 마리씩 가두어 두고 있습니다.

아니 누구는 여러 마리를, 또는 서로 다른 짐승들을

가슴 속에 가두어 두고 사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테고

듣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요.

이 책을 읽고

내 안에 어떤 짐승이 있는지

책을 덮고 가만히 내 가슴 속을 향해 귀 기울여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런 행위를 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아마도 누가 보면 명상하는 듯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 짐승들은 어디론가 가 고자 합니다.

그 짐승들은 내가 듣지도 맡지도 못하는 것들을 느끼고 누군가 자기를

부른다며 그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 짐승들은 가고자 하는데 우리는 그 목숨들을 가두어둡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원초적인 욕망일 수도 있고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재능일 수도 있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허물을 벗어할, 그 어떤 존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이에게 구렁이는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도 물이는 구렁이를 처음부터 느낄 수 있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자기 내면의 어떤 목숨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것은 책 속에 나와 있는 말들 그대로, 자기를 찾아 떠나는 삶이겠지요.


구렁이에 대한 존재를 생각하다가 다시

머리카락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성을 다해 옷을 깁는 것, 무언가를 뜨는 행위는

예부터 어떤 의미였을까, 이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말이지요.

달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 뽑아서 짓지 않고 왜 여러 사람에게 머리카락을 구했을까.

이 작품은 “존재”와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달이와 구렁이는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머리카락”은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매듭”짓는 주요한 모티브입니다.

한 사람의 머리카락이 아닌 여러 사람의 머리카락.

이것이 이 작품 속에 스며있는 이야기 힘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달이.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모습.

그것은 황금을 찾아 세상을 두루 여행하던 산티아고가 마침내는 자신의 고향에서 황금을 발견한다는 《연금술사》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허나 산티아고가 여행의 흥미가 강조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물이, 길 떠나는 아이》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여행이나 모험의 흥미를 넘어 “관계”의 중요성을 넌지시 속삭여주기 때문에 더욱 감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매듭이 아름답습니다. 오래 동안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독특합니다. 그건 뭘까요? 아주, 아주 오래전 사람들의 혼 -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 그 혼들의 이야기 결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흘러내려온 우리 정신의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는,

우리 이야기 흐름들과 우리네 이야기 토양들이 촘촘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서구적인 판타지 동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친근한 이야기 정서가 오히려 산뜻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줍니다.

많은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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