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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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만큼 슬펐던, 슬픈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그때와 많이도 멀어진 지금,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intro 타블로

 

나는 침실에 틈이 있는지 항상 확인하곤 한다.

p11

 

사람이 잠을 자다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갈 곳을 찾는데,

출구가 없으면 영원히 방 안에 갇혀버리게 된다는 말을 들은 첫번째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 말한다.

첫문장을 읽고, 뭔가 아련함을 느꼈다.

죽음을 염두해둔 청년의 습관.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갇혀버리게 된다는 것이 두려워보이는 그.

갇혀있기를 싫어하지만, 정작 떠나지도 못하는.

아무도 붙잡는 사람은 없다.

그 스스로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이 집으로 부터, 자기 자신으로 부터 붙잡고 있다.

아버지처럼 되기 싫다는,

혹은 너무나도 아버지처럼, 한때 아버지가 가진 그 눈빛을 닮고 싶다는,

모든 생각들을 다 움켜지고 정리하지 못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소설집 처음을 연다.

 

 

 

 

 

 

 

"니가 말했지?

내가 너의 경제력이나 심지어 너의 그 빌어먹을 사생활조차 신뢰할 수 없다고 해도,

너의 가능성만큼은 믿어달라고.

근데 뭐야? 도대체 무슨 가능성?

마크. 미안하지만, 이건 진짜 너가 아니야."

p140-141

 

불행히도 마크는 자신이 저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어쩌면 내가 지금의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외치고싶은 말이다.

이건 진짜 니가 아니야.

아니, 나 자신에게 외치고 싶은 말일 수도 있겠다.

'가능성'을 믿어달라고 말하고, 그 믿음만을 믿고 행동으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에 신뢰를 얹을 수 잇을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넌 몰라

라고 말할 수도있겠지.

그렇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초점을 잃은 모습 뿐이다.

'가능성'을 믿어달란 건, 용기없는 자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나 스스로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 할 수밖에 없다.

나 아니면 누가 말해 줄 수 있나? 너에게. 나에게.

 

 

 

 

 

 

"내겐 항상 비가 와요.

하늘이 부서지고 유리 조각들이 쏟아져요."

p194

 

당신의 조각들은 나에게 유리 조각처럼 쏟아져내려요.

아름다움이 슬픔이고, 슬픔이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

정신과 상담을 받는 그녀는 우리눈엔 안쓰러워보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답다.

그녀를 치료하던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구해줘"라 말한다.

그러나 그녀와 그는 커다란 벽으로 단절되있다.

이미 그가 그녀를 구해주기도, 그녀가 그를 구해주기도 틀렸다.

우리는 스스로 내 주위에 벽을 쌓고, 넘지 못한다.

벽을 부수는 것도 나의 몫인데, 그저 동경만 할뿐.

 

 

 

 

  참을 수 없었다. 시험기간이고 뭐고, 사실 <닥치고 정치>를 읽고 있었지만, 뭔가 또 하나의 시험 공부를 하는 듯한 불편함에 바로 타블로의 소설집을 꺼내들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때, 아니 그 이전 20살의 타블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려고 애썼다. 그에게 일어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마녀사냥은 이 이후의 일이니, 되도록이면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밤마다 고요히 그의 음악을 들었던 교복을 입던 나를 떠올리며, 그렇게 가만히 책을 읽어내려갔다.

  <당신의 조각들>. 우리들의 조각들이기 이전에, 타블로 그의 조각들이었다. 그의 노래가사 속에 나오는 블루노트의 선선함, 날카로움, 아픔 모든 것이 그 곳에 있었다. 길고 짧은 10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었다. 각각 다른 제목을 가진, 다른 시간에 쓰여진 소설이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듯 했다. 모두 다 픽션이라고 했지만, 타블로의 모습을 씻어내기엔 내가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는 아주 긴 여운을 남긴다. 그저 지나가는 습작일지라도, 순간 스쳐간 그의 감성,감정들은 그 곳에 오롯이 있었다. 스스로 이제 막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어설프게나마 가지게 되었던 그 때의 자신의 글을 번역한다는 것. 영어에서 한글로 옮겨 쓰는 그의 행위는 10대와 20대의 그 사이에 어설프게 존재하던 자신을 20대를 다 지나보내며 조금 더 성숙하게 다듬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싶었다던 그의 인트로가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그 당시의 어설프고, 혼란스러웠던 그의 모습들이 완성되지 못한, '간발의 차'로 완성을 미루고 있는, 그 소설속의 주인공들에게 투영되어있다.

  욕심이겠지. 내 조각들도 언젠가 누군가들에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

 완전치 못한 사람들이다. 그의 소설에 결코 행복한 사람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완전하단 것은 뭘까.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어디 한군데씩 고장난 우리들의 조각들. 그 조각들을 맞추면 어쩌면 완전해질 수 있지도 않을까. 왜 난 조각났을까. 그것이 내 조각이긴 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답은 없다. 내 스스로가 찾아야 할 답은, 아직 내게 나타나기 싫은 가 보다.

  그러나, 이 책.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어디선가 이게 싸이월드 다이어리와 다른점이 무엇이냐는 글을 봤다. 내 다이어리가 이런 글들로 가득하다면, 난 행복할 것 같은데. 어쩌면 허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조각들인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게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엔딩이 없기 때문일까. 애초에 그런 엔딩이 존재하긴 할까.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내게, 참 깊이 생각하며 읽을 만 한 책이었다. 그러나, 허전함이 남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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