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솔로 1 노희경 드라마 대본집 4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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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솔로 서평


 예전에 우연히 케이블 방송에서 몇 명의 여인들이 소담스럽게 파티를 하는 장면을 보고 저 드라마는 뭐지라는 의문과 함께 언젠가 처음부터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 그 드라마가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라는 걸 알고 몇 번이고 처음부터 보려고 벼르다가 번번이 시간을 놓쳐 보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굿바이 솔로’ 대본집 서평 이벤트에 당첨이 되게 되어 대본을 읽게 되었다.

읽던 도중에 이사라는 큰 일이 생겨버려 중단을 했다가 최근 며칠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밤낮없이 읽으며 민호와 수희, 미리, 호철, 영숙, 미영, 지안과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읽는 내내, 한 회 한 회 뒤로 가면 갈수록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대본집을 다 본 지금도 대본에 나왔던 인물들을 떠올리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지안이 그랬던가 누군가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지안과는 다른 이유에서지만 유난히 인간관계라는 것이 힘들었던 내 학창시절과 대학시절까지 내가 끊임없이 품고 있던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내가 몇 년 전 얻었던 결론은 이런 거였다. 완전히 이해를 해준다거나 공감을 한다는 건 허상일 뿐 실제로 일생을 살면서 그런 사람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커다란 행운이라고 ...그러한 것은 사실 세상에 존재하기에는 너무 환상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결론을 내린 이후 나는 그러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참 외롭지만 세상은 혼자서 가는 거라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지금껏 살아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지안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민호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던 말은 참 나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과연 그런 이야기라는 걸 해줄 수 있는 걸까? 나라면 과연 내가 창조해낸 캐릭터에게 그런 말이 나오게 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에서 그들은 과거 재개발 현장에서 사회적 대립 때문이라도, 그리고 수희 때문이라도 갈등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이 서로를 향한 시선은 갈등이라고 보기에는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민호의 집에 살게 되면서 민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지안이나 퇴학까지 되게 만들었던 지안의 가정사를 알고 지안을 이해하게 된 민호나 서로를 향한 시선은 증오나 분노보다 상대에 대한 이해로 가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민호가 지안의 여자 친구였던 수희와 사귀게 되었다고 그것이 지안에 대한 배신이나 지안을 정말 제대로 이해해줄 한 인물이 사려졌다는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다.


 그건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완벽하게 무결한 관계란 존재할 수 없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관계라 해도 상처를 주는 인물들이나 상처를 받은 인물들조차 그 시선 안에는 여전히 상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현재의 행동만으로 그들을 그려내지 않는, 그들 각자가 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마치 똑같이 크기만큼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작가는 그들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까지 골고루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보여줄 시간을 준다. 마치 공평하게 간식을 나누어 주는 엄마의 모습처럼 작가는 그들 모두에게 공평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면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어느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대본집을 보고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사가 아닌 지문이었다.

 '예쁘게 보는'

 '웃는'

 '맘 아프게 보는'

 ‘굿바이 솔로’의 대본에서 유난히도 많이 나온 지문이었다. 이 모든 게 상대를 향한 지문이었다. 특히나 ‘예쁘게 보는’이란 지문은 참 많이도 나왔다. 그 반복되는 지문들을 보며 그 순간 수희의 예쁘게 보는 표정은 어떤 표정일까, 미영 할머니는 어떤 시선을 하고 있을까? 나는 대본집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상대를 예쁘게 보고 맘 아프게 보며 글썽이는 그들의 시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을 향해 있는 유난히 서로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바라봐주는 그 시선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참 예쁘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할 이야기를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말을 하지 않던 미영 할머니가 ‘이뻐’라고 말했을 때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드라마 속 상투적인 이야기 전개와 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치 현실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것으로 오인할만한 굿바이 솔로는 그 어느 드라마보다 상대를 향한 그 시선들이 너무나도 끊임없이 따뜻하기에 나에게는 너무 판타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있음직한 이야기로 존재할 순 없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수희와 영숙과 미리의 파티가 그렇게도 내 마음을 끌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들의 타인을 향한 그 따뜻한 시선 안에 나도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대본집을 다 읽은 날 아침 출근을 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예쁘게 보는’이라는 지문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과연 나는 드라마 속 그들처럼 일상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 나는 그러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나에게 어디선가에 미영 할머니의 ‘이뻐’라는 목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예쁘게 웃어주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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