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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ㅣ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7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팍팍하고 강팔라서 잠시 마음을 놓고 싶을 때, 완전한 다른 삶을 추구하고 회피하려 하는 목적에서 이 책을 선택하고 읽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 책,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은 이철수의 나뭇잎편지라는 연작 시리즈 중 3번째 권이다. 저자는 판화작가, 농부로 두 가지 삶을 병행하는 자연인 아닌 자연인이다. 책의 내용 역시 그의 이러한 삶의 프리즘이다. 그렇지만 이상주의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더욱 아니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사물과 풍경 그리고 삶의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과 시각을 통해 사유한다. 때론 사회의 팍팍함과 불합리함을 날카로운 자연어로 비유, 비판, 통찰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의 저작은 뜬구름 잡는 식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엄연히 저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엽서책이다. 엽서 형식으로서 독자와 저자 간의 의사소통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만이 갖는 특별한 장점 중 하나다.
책의 구성은 겨울, 봄, 여름, 가을로 나뉘어져 있다. 자연스럽고 자연주의적인 목차구성이다. 글의 내용 역시 시기와 시간에 따라서 주제와 내용이 시계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주제의 내용과 사유가 시계열적이라 해서 처음부터 연속적으로 읽어야 한다거나 어느 장, 절을 골라 읽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읽고 싶은 부분을 펼치면 되어서, 독자들이 읽기에 단순하고 편한 구성양식을 지녔다. 또한 문체가 단순하고 평이한 잡문, 선시, 서간문 같기도 해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책의 구성과 잘 어우러진다.
책의 다른 특징으로는 책을 펼쳤을 때, 오른쪽은 그가 직접 조각한 판화와 글이 예술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책의 형태가 다른 책들과 다른 가로 모양인 이유다. 왼편은 판화에 나타나는 흘림글씨를 알아보기 쉬운 인쇄체로 동일하게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니까, 펼쳤을 때의 두 페이지는 한 페이지의 내용인 것이다. 그만큼 읽어야 할 부분이 적당하고 시각적 전달성이 강하고 내용은 평이해서 독자지향적이다. 다만, 판화의 시각적 전달력은 책의 부피 이상이나, 판화그림이 글을 압도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다. 허나 이 책의 장점에 비하면 너무 미미한 수준이거나 그것 역시 장점에 포섭된다. 판화그림이 주는 감흥은 역시 이 책이 주는 독자를 위한 특별 선물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들은 저자의 섬세함과 그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판화그림의 단순함 속에서 잔잔한 심적 울림을 경험한다. 어디서나 어느 때, 그리고 읽고 버리는 상품성 중심이 아닌 잡초처럼 질긴 오랜동안의 사유의 독서가 누구에게나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여백의 공간에 차 한 잔과 어울리는 음악CD 한 장쯤 고르는 수고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책을 읽다보면 아름답고 지혜로운 말이 참 많구나! 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다녀가는 생명이 이렇게 많으니 그 안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인 들 오죽 많을까싶기도 하구요. 이 많은 지혜의 언어들이 있고, 아름답게 살다 가신 지혜의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은 왜 여전히 잔반통처럼 어지러운 걸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엽서를 준비하면서, 아름다운 말에 스스로 갇혀 지내는 것 아닌가?스스로 묻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일이 더 소중한 것인 줄은 압니다. 실천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뉘우침.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