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조화 - 심미적 경험의 파장
문광훈 지음 / 아트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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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적 경험, 좀더 좁혀 말하여 예술의 경험에서는 나와 타자,감성과 철학, 육체와 이념,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만나 충돌하며 어울리기 때문이다.이런 교류 속에서 각자는 고유한 형식을 교정하면서 부단히 변모시켜간다.-10쪽

감각적이고 성찰적 차원들은 서로 밀접하게 작용하면서 대상에의 공감력을 키우고, 이 공감력을 훈련하는 가운데 주체는 자신의 현존적 지평을 확장해간다. 이것은 개체적 갱신이자, 사회적 변화의 과정을 이룬다.......여기서 심미적 경험은 '어떤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으로 이해된다. -11쪽

진실한 예술은 실존적 절실성에 닿아 있으면서도 사회적 공적 성격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예술은 지각과 사고, 주체와 객체를 매개하는 '건전한 공공재'일 수 있다...... 심미적 경험은 오늘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그리하여 삶의 포괄적 긍정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11~12쪽

방의 의미는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의 내면 공간이며, 이렇게 보장된 자기공간은 다른 사람의 공간을 인정하는데로 이어진다. 개인의 방은 이상적인 경우 세계관과 정체성의 토대가 되고,이 토대로부터 주체는 세계의 타자와 동등하게 교류할 수 있다.-13쪽

예술작품에서 나는 성장과 갱신을 위한 자유로운 압력을 느낀다......
성실한 노력에 현실이 늘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무대를 더 자주 다스리는 것은 영악과 술수이다. 이때의 분노와 환멸을 어떻게 다 다독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삶의 살아있음이 무엇보다 찬사되어야 함을, 우리 모두의 공존적 평화에, 이 화해의 파장에 글이 복무해야 함을 깨우쳐 주는 것은 다름아는 예술이다. 시와 그림,그 이상의(짧은)활기와 (헛된)자부심을 주는 것도 달리 없지 않는가. 그것은 현존적 삶의 대치할 수 없는 유일무이성을 강제없이, 더 없는 자유속에서, 또한 즐거움으로 깨우쳐준다.
나는 예술에서 내 가장 정직한 친구를 만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예술 속을 헤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예술은 일체의 부정적 힘-폭력과 자본과 편견과 권력과 시장에 저항하는 정당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15~16쪽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세계의 진실을 믿듯 소수의 언어를 신뢰하고, 소수의 인간을 사랑하듯 자연의 경이를 찬탄한다. 신 보다는 신성을 믿고, 신성보다는 자연을 믿으며, 자연보다는 여기 앉아서도 보이는 창 밖의 여위어가는 나무들, 그 초록의 싱싱함을 귀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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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잎새와 손가락과 심장과 매미와 고슴도치,분노와 환멸......이 모든 것이 이 모든 것들과 노래하며 펼쳐지고 있다.사물에 내재하는 살아있는 흔적의 숨죽인 환호성을 나는 찬미하고 싶다. 이미 살았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것들의 어두운 진실성을 밝히는 일, 그것은 세계를 증거하는 일이면서 나를,내 삶을 증거하는 일이다.예술은 내 다른 정체성과 대면케 하고, 세계는 이런 대면에서 또 한겹 한겹씩 드러난다. 자유를 선사하라.네게 심장을 줄 것이니.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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