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 문예교양선서 38
진 웹스터 지음, 한영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의 아름다움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그녀의 눈에서부터 나온다. 갑갑한 세상을 즐기는 일이란 그러한 아름다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난 이러한 점에서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주디가 맘에 들었다. 우선 타의든 자의든 이런 책을 접할 수 있게 해주신 그 분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오늘에서야 내가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보는 능력이 떨어진 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야말로 저자가 원하는 대로 이 책에 빠져 들어갔기 때문이다.

줄곧 고아원에서 자라온 그녀가 원하는 건 ‘갑갑한 그 곳에서의 탈출’이 전부였을 지도 모른다. 처음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는 주디는 내가 기대한 만큼 긍정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그것이 그 ‘갑갑함’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동안 ‘보호’를 위한 관리를 받았을 뿐이지 진정한 사랑으로 그녀를 감싸줄 누군가가 그녀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키다리 아저씨가 그녀를 진정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맡은 직책이 고아원의 원아들을 지원해 주는 이사의 자리이므로, 일종의 투자로 시작한 일이 바로 여학생으로는 처음인 주디를 작가로 키우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사실이다. (여기에서 내가 그 아저씨를 ‘우리의’ 라고 표현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그를 열렬히 비판하며 그야말로 평론을 써 내려간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는 주디 뿐 아니라 나 같은 아직 어린 독자의 고민까지 상의해 줄 넓은 가슴을 가진 아저씨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처음의 목적이 무엇이었던 이 책의 주인공 주디의 심적 변화를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을 짚어 보자는 것이다. 주디가 일종의 ‘탈출’에서 멋지게 성공한 후에도 그녀는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살던 고아원과 원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는 의사를 거리낌없이 표현한다. 원래 주디가 매사에 낙천적이라는 성격적 특성을 배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의 그녀는 모든 것에 감사한다는 다짐을 한다.

내 친구 중에 키다리 아저씨를 엄청 좋아하던 친구 한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도 주디처럼 그런 사랑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만화를 보고 꿈꿔오던 그 모습에서 하나도 지금 변한 마음이 없다. 이것 자체가 이상한 일 일진 모르나 그만큼 키다리 아저씨는 언제나 변치 않는 우리의 아저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마지막 행복한 결말을 통해 우리에게 차가운 머리를 잃게 했다. 물론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사랑은 아닐 뿐더러 오늘 이 글을 쓰는데 엄청난 장애물일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괴로움보단 기쁨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것은 처음 시작이 어땠던 최대한 주디를 행복하게 해 주려 노력한 우리의 키다리 아저씨가 정말 고맙고 그런 행운을 스스로 자신의 행복으로 만든 주디가 부럽다는 그런 사실 이상의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거나 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기른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 순수한 마음으로 동경한 키다리 아저씨가 아직도 멋있는 아저씨로 남아 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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